남자 배구도… ‘학폭 파문’ 코트 강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15일 03시 00분


코멘트

여자부 이재영-다영 자매 이어 “송명근-심경섭 학폭” 피해자 글
“고환 봉합수술 할 정도로 당했다”… 구단, 남은 경기 출전 안 시키기로
진상규명-엄정대응 촉구 靑청원도

‘학교폭력(학폭)’의 그림자가 배구계에 길게 드리워지고 있다. 프로무대인 V리그의 파행을 넘어 팬들의 신뢰마저 잃을 위기다. 배구계를 넘어 스포츠계 전체로 퍼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10일 한 인터넷 게시판에 여자부 흥국생명의 쌍둥이 자매 이재영·이다영 선수(25)의 학폭 피해자의 글이 올라오면서 시작된 사태는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13일에는 국가대표로 활약한 남자부 OK금융그룹의 송명근(28), 심경섭 선수(30)의 중고교 시절 학폭 피해자의 글이 게시됐다. 고환 봉합수술을 받았을 정도로 폭행 수위가 높았음에도 진심 어린 사과를 받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같은 날 이재영·이다영 선수에게 학폭을 당했다는 다른 피해자의 추가 폭로가 나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두 선수를 알게 됐다는 피해자는 “기본인 빨래도 동료고 후배고 할 것 없이 시키고 틈만 나면 자기들 기분 때문에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욕하고 툭툭 쳤다”며 일상화된 학폭을 주장했다. 14일 오후 10시 현재 관련 진상 규명 및 엄정 대응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글에는 약 8만 명이 동의했다.

사태가 확산되면서 배구계 전체가 긴장하고 있다. 팀마다 학폭 가해자가 추가로 드러나지 않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남자부 한국전력은 자체적으로 학폭 관련 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구단과 한국배구연맹(KOVO), 대한민국배구협회의 미온적 대처도 도마에 올랐다. 서로 눈치만 보면서 결정을 미루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두 구단의 경우 사과의 뜻은 밝혔지만 내부 징계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사안의 심각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V리그에 학폭 논란이 처음 불거진 데다 추가 피해 증언이 나오는 상황에서 선뜻 수위를 정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학폭 가해자로 지목된 네 선수 모두 남은 시즌 출전은 어려워 보인다. 앞서 이재영·이다영 선수는 11일 한국도로공사와의 경기에 결장했다. OK금융그룹은 송명근, 심경섭 선수의 의사에 따라 이번 시즌 잔여 경기에 두 선수를 내보내지 않기로 했으며 선수단 전수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송명근 선수는 14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저는 학교폭력 가해자가 맞습니다.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였다”며 “나이가 들어 아빠가 되고 많은 후배가 생기다 보니 그때 했던 행동이 얼마나 심각하고 위험하고 나쁜 행동이었는지 처절하게 느끼고 있다”는 사과문을 올렸다.

학폭 전수조사, 학폭 예방기구 설치 등의 필요성도 거론되고 있다. 승부조작 사태처럼 가해 선수들이 먼저 제 잘못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자진신고 기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한 배구계 관계자는 “아직도 많은 학폭 가해자들이 남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성적 만능주의, 운동 선후배 사이의 서열의식 등에 가려져 학폭을 향한 무딘 시선이 스포츠계에 팽배하다는 지적이다. 폭행 논란 이후에도 여전히 현장을 지키는 지도자들도 많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곪은 상처를 확실하게 도려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학교폭력#학폭#이재영#이다영#송명근#심경섭#v리그#국민청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