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체임원 상당수 임기 채워 블랙리스트 아니다’는 청와대
재판부는 “13명 사표 받는 과정서 직권남용-강요죄 등 발생” 판단
법원내부 “불법으로 내편 챙기려해… 전 정권 블랙리스트보다 죄질 나빠”
신미숙 “난 결정권 없어” 윗선 언급
“사표를 제출했다는 공공기관 임원 13명 역시 상당수가 임기를 끝까지 마쳤다. 문재인 정부에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10일 청와대 관계자)
“임기가 남아 있거나,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직무를 수행할 수 있거나, 연임 명령을 받은 공공기관 임원 13명에게 사표 제출을 요구한 것은 직권남용 또는 강요죄다.”(10일 공개된 판결문)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으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대통령균형인사비서관의 판결문에는 10일 청와대의 해명과는 정반대되는 내용이 나온다. 1심 재판부는 전 정권에서 임명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에게 사표를 제출을 요구하고, 청와대와의 협의 아래 빈자리에 ‘낙하산 인사’를 임명한 것은 직권남용과 강요죄 등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 “화이트리스트를 위한 블랙리스트 사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1부(부장판사 김선희)는 임기를 못 마치게 했는지가 아니라 사표를 제출하게 한 것이 범죄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전 정권에서 임명한 공공기관 임원 13명에게 사표를 제출받는 과정에서 세 가지 유형의 직권남용죄가 발생했고, 1명에 대해선 강요죄가 인정된다고 봤다.
우선 공공기관운영법 등이 정하는 사유가 없는데도 임기가 남아 있는 임원들에게 사표 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직권남용이라고 재판부는 밝혔다. 한국환경공단 등 공공기관 4곳의 임원 6명은 임기가 남아 있었지만 2018년 1월 사표를 냈다. 임기가 만료됐더라도 관련법에 따라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직을 유지할 수 있는 임원들에게 사표를 받아낸 것도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등 기관 2곳의 임원 4명은 후임자가 오지 않았지만 2018년 1월 사표를 제출했다. 임기 만료 후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근무하라는 연임 명령을 받은 이들에게 사표를 받아낸 것도 직권남용으로 인정됐다. 2명의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임원들은 후임자가 임명되지 않은 2018년 1월에 사표를 제출했다. 전 정권에서 임명된 김모 한국환경공단 상임감사가 사표를 제출하지 않자 표적 감사와 협박을 통해 2018년 3월 사표를 받아낸 것에 대해선 강요죄가 인정됐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달리 이번 사건은 ‘화이트리스트를 위한 블랙리스트’라는 성격도 있다”고 말했다. 전 정권 인사에게 불이익을 주는 블랙리스트를 넘어 현 정부와 가까운 인사들에게 연봉 1억 원 이상의 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불법 행위여서 죄질이 더 무겁다는 것이다. 환경부와 청와대는 사표를 제출받으면서 후임 내정자들을 합격시키기 위해 면접에 도움이 될 내부 자료를 사전에 제공하고, 면접관들을 동원해 높은 점수를 줘 합격하도록 했다.
○ 신 비서관 “나는 결정권 없는 중간 관리자”
현 정부에 블랙리스트가 없다는 청와대 해명과는 달리 신 전 비서관은 법정에서 조현옥 전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 등 ‘청와대 윗선’이 관여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신 전 비서관은 지난해 11월 27일 결심공판에서 “(나는) 결정권이 없는 중간 관리자이고 인사 수요가 발생하면 (지시를) 주는 대로 회의 자료를 작성·관리한 것뿐”이라며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청와대) 수석급 이상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인사위원회와 인사추천간담회에서 토론을 거쳐서 (인사를) 결정했다. 결과는 인사수석과 재확인한 뒤 부처에 전했다”고 했다. 이어 “환경부는 일괄사직 일괄추천 등 수시로 의견을 보내왔는데 빠짐없이 보고하고 인사수석에게 방침을 요청했다”며 “비서관은 수석의 지시가 없는 한 장관의 업무 파트너가 될 수 없다”고 했다. 판결문에는 “비서관이라는 지위에 비춰 신 전 비서관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었다”는 표현이 나온다. 다만 앞서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돼 검찰 수사가 신 전 비서관에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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