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prostitute)’로 규정한 논문이 나와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문제의 논문은 존 마크 램지어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사진)가 쓴 ‘태평양 전쟁에서의 매춘 계약(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입니다. ‘국제 법 경제 리뷰’ 3월호에 게재될 예정이지만 논문 초록은 이미 인터넷상에 공개됐습니다.
램지어 교수는 이 논문에서 여성들에게 매춘을 강요한 주체는 없으며 어린 여성들을 꼬드긴 국내 모집책들이 문제라고 서술했습니다. 따라서 일본군 위안부는 공인된 매춘부이지 성노예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 글은 단순한 기고문을 넘어 학술 논문이라 더 심각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램지어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역사적 사실의 가해자와 피해자 개념이 없어집니다. 논란이 일자 해당 학술지 측은 홈페이지에 ‘우려 표명’이라는 공지를 올렸지만, 논문 자체를 철회하기보다는 반론과 함께 게재할 것이 유력해 보입니다.
사실 램지어 교수는 역사학자가 아닙니다. 경제학과 법학을 공부하고 일본법을 강의하는 교수입니다. 그는 게임이론에 입각해 논문을 구성했습니다. 돈을 많이 벌려는 매춘업자와 노동을 적게 하려는 예비 매춘부가 각자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키기 위해 고용 계약을 맺었다는 식입니다. 일본 학자들과 국내 일부 극우 인사들이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지지한다는 서한을 학술지 측에 보내 게재를 압박한 가운데 국내외에서는 반대로 논문 철회를 요구하는 비판이 커지고 있습니다.
“난 이 논문을 읽었을 때 참 놀랐어요. 배경 설명도 없고 논리도 아주 빈약해 F학점입니다.” 마크 피터슨 미국 브리검영대 명예교수의 말입니다. 카터 에커트 하버드대 역사학 교수도 “램지어의 논문은 비참할 정도로 실증적으로, 역사적으로,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다”고 혹평했습니다. 석지영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역시 이 논문에 대해 “근거와 설득력 없는 ‘실패한 연구’”라고 비판했습니다.
램지어 교수의 제자인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대 역사학 교수조차도 해당 논문의 편향성을 지적했습니다. 수많은 학술적 증거를 배제하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증거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겁니다. 더든 교수는 “논문 전체가 오류와 실수로 가득 차 있어서 학술 논문으로 출간돼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램지어 교수는 유소년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고 2018년에 일본 정부가 주는 훈장인 ‘욱일중수장’을 받았습니다. 그의 공식 직함은 ‘미쓰비시 일본 법학 교수’입니다. 여러 경로로 일본 단체 및 정부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의 학문적 편향성의 씨앗이 어디서 싹텄는지 추측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역사 기록과 생존자들의 증언은 차고도 넘칩니다. 유엔과 국제앰네스티 등이 이를 인정했고 일본 정부 역시 과거 고노 담화 등을 통해 잘못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 역사적 실체를 통찰하지 못한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 황당무계한 이유입니다.
일찍이 독일의 지성 막스 베버(1864∼1920)는 과학적 탐구의 길을 밝혔습니다. 연구 주제 선정 및 대책 수립 단계에서는 가치 개입이 불가피하지만, 연구 과정에서는 철저히 가치중립적 자세를 지녀야 한다는 겁니다. 베버가 살아있다면, 역사적 증거를 입맛대로 취사선택해 곡학아세(曲學阿世)한 램지어에게 어떤 말을 전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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