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술취한 피해자 ‘블랙아웃’…성관계 동의로 해석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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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년 2월 21일 09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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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해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가 ‘블랙아웃’이 발생해 범행 당시 상황을 기억 못한다고 해서, 스스로 성관계에 동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봐서는 안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준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공무원인 김씨는 2017년 2월 새벽 술에 취해 길을 돌아다니고 있던 미성년 피해자를 모텔로 데리고가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김씨가 생면부지의 어린 피해자를 모텔로 데려가 추행하고, 현재까지도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어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했다.

반면 2심은 “모텔 CCTV 사진 및 영상을 보면 피해자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비틀거리지 않았고, 모텔 카운터 직원도 피해자가 반듯하게 서 있었고 비틀거리는 모습을 전혀 보지 못했다고 진술하는 등 심신상실 상태에 이르렀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는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고 노래방으로 이동한 이후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는데, 피해자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스스로 행동한 부분도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피해자가 성관계에 동의한 이후 ‘블랙아웃’ 상태가 됐을 수 있다고 봐 1심을 파기하고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심의 판단을 깨고 사건을 다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음주 후 필름이 끊겼다’고 진술한 경우 평소 피해자의 음주량과 음주속도 등을 심리하지 않은 채 알코올 블랙아웃의 가능성을 쉽사리 인정해서는 안된다”고 짚었다.

이어 “알코올의 영향은 개인적 특성 및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며 “피해자가 어느 순간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비틀거리지는 않고 스스로 걸을 수 있다거나, 자신의 이름을 대답하는 등의 행동이 가능하였다는 점만을 들어 범행 당시 심신상실 등 상태에 있지 않았다고 섣불리 단정할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짧은 시간 다량의 술을 마셔 구토를 했고, 자신의 일행을 찾지 못했으며, 경찰이 모텔 객실로 들어오는 상황에서도 옷을 벗은 상태로 누워있었을 만큼 판단능력 및 신체적 대응 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상태였다”며 “이같은 사정에 비춰보면 피해자는 피고인이 추행을 할 당시 술에 만취해 잠이 드는 등 심신상실 상태에 있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제반 사정에 대한 고려 없이, 블랙아웃이 발생해 피해자가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피해자가 동의를 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김씨가 피해자의 심신상실 상태를 인식하고 이를 이용해 피해자를 추행하였던 것으로 볼 여지도 충분하다”며 사건을 2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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