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려면 버스라도 팔아야 하는데, 살 사람은 없고…. 1년 넘게 운행을 못 하니 차들에 부식까지 일어났어요. 말 그대로 주차장에서 썩고 있는 거죠.”
21일 서울 양천구 목동종합운동장 주차장.
중소여행사 대표인 정모 씨(61)는 한쪽에 늘어선 전세버스 20여 대를 바라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난해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된 뒤 여행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행사나 관광 자체가 없다 보니 버스들이 기존의 1%도 운행을 못 했다고 한다. 정 씨는 “식당은 낮에라도 여니까 손님을 받기는 하지만, 우리는 버스 대절 관광이 아예 씨가 말랐다”고 전했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가 다소 완화되며 일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는 반응이 나온다. 하지만 여행업계는 여전히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5인 이상 집합금지 등으로 단체여행이나 행사는 여전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여행업계 피해 규모는 약 7조4000억 원으로 추산된다. 한국여행업협회는 “지난해 8월 기준 전국 3953개 여행사가 사실상 폐업이나 다름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고 전했다. 이미 폐업을 신고한 여행사도 202곳에 이른다.
정부의 고용유지 지원금도 별 소용이 없다. 직원이 30여 명인 A여행사를 운영하는 김용동 씨는 “정부 지원금을 받으면 직원들의 4대 보험과 임금 10%를 사업주가 보전해야 한다”며 “매출이 없으니까 이마저도 버틸 수 없어 지난해 말 일부 직원을 내보냈다”고 토로했다.
전세버스의 경우엔 여행이나 행사 수요만 없어진 게 아니다. 재택근무와 비대면 수업이 일상화되며 통학 및 통근 버스도 대부분 운행이 중단됐다. 전국전세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 측은 “국내 단체여행도 끊겨 막막해지자 일부 업체는 사채를 빌려 차량 대금을 내고 있는 실정”이라며 “전체 전세버스 가운데 82% 이상이 운행 중단 상태”라고 설명했다.
여행업계 전체가 도산 위기이다 보니, 업계 종사자들도 고통에 허덕인다. 프리랜서 관광통역안내사로 일해온 박수현 씨(44)는 지난해 투어를 단 1건도 나가지 못했다. 결국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 일본어학원에서 아르바이트 강사 일을 시작했다. 박 씨는 “주변 통역사 중에 알바를 안 하는 사람이 없다. 일 자체가 끊겨 생계를 위협받을 지경”이라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세버스 업계가 18일 서울 여의도 등지에서 차량 시위를 벌인 데 이어, 22일엔 ‘여행업 생존 비상대책위원회’(여행업 비대위)가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가질 예정이다.
여행업 비대위는 △4차 재난지원금 및 손실보상법 제정 시 집합금지 업종에 준하는 지원 △무담보 신용대출 확대 및 대출조건 완화 △ 자가격리 14일 기준 완화 △관광산업 재난업종 지정 등을 요구할 것으로 전해졌다. 비대위 측은 “22일 오전 10시경 청와대 분수대 광장 앞에서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른 생존권 확보를 위한 집회를 열 계획”이라며 “23∼26일에는 1인 피켓 시위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오창희 공동위원장은 “방역당국의 여행자제 권고 등으로 영업이 사실상 막혀 있는데도 여행업은 일반 업종으로 분류돼 있다. 여행업은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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