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 씨(65)는 지난 주말 지인들과 등산을 한 뒤 서울의 한 프랜차이즈 커피숍 매장을 찾았다가 직원과 실랑이를 벌였다. 휴대전화 사용이 서툰 김 씨가 QR코드 체크인 대신 수기로 명부를 작성하겠다고 하자 직원이 신분증을 요구했기 때문. 직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규정”라고 했지만 김 씨는 “외식업체 뿐 아니라 공공시설에서도 신분증까지 보여준 적은 없다”고 불쾌해했다.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 씨가 23일 아이와 함께 화재를 피해 스타벅스를 방문했다가 QR코드와 신분증이 없어 입장하지 못한 사례가 알려지면서 핵심 방역지침 중 하나인 ‘출입자 명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수기작성 시 신분증 확인이 현실성이 떨어지다보니 다수 업장에서 아예 사문화된 반면 일부에선 과잉 적용되며 혼선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방역 당국은 지난해 9월부터 유흥시설, 노래연습장 같은 ‘고위험시설’뿐만 아니라 식당, 카페에서도 출입명부 작성을 의무화했다. 또 11월부터는 영업 면적 150㎡ 이상의 음식점, 카페에서도 전자출입명부(QR코드) 설치와 이용을 의무화하고 2세대(G) 휴대전화 이용자와 단기체류 외국인, 휴대전화 미소지자는 신분증과 대조 후 수기명부를 작성하도록 했다. 150㎡ 미만일 경우 전자출입명부나 수기명부 중 택일할 수 있다. 이를 어기면 최대 3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하지만 적용은 제각각이다. 25일 오전 기자가 방문한 서울 마포구의 한 유명 카페에선 매장 취식임을 알렸지만 QR코드 체크를 요구하지 않았다. 앞뒤로 줄을 선 구매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카페 점원은 “출근 시간대 밀려드는 주문을 처리하며 일일이 확인하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수기 명부 관리는 대부분 요식행위로 그친다. 서울 강남구의 한 식당 주인은 “미성년자 여부를 파악하는 것도 아닌데 신분증을 요구하는 게 고객이 불쾌할까봐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의 카페 점주는 “그런 규정이 있는지조차 몰랐다”고 했다.
반면 방역 지침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영유아를 포함한 미성년자에게 주민등록등본 등을 요구하는 등 규정을 과잉 적용하는 곳도 있다. 등본을 통한 신분 확인방식의 근거는 방역지침에 없다. 인터넷카페 등에는 출입명부를 둘러싼 다양한 불만이 올라온다. A씨는 6세 아이와 함께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찾아 QR체크인을 했지만 아이 등본이 없다는 이유로 입장이 거절됐다. B씨는 중학생 자녀들과 함께 유명 맛집에서 1시간 대기한 뒤 QR체크인을 하고 들어가려 했는데 자녀들 신분증까지 요구받았다. 그는 “아이들이 학생증을 집에 두고와서 그냥 돌아나와야했다”고 말했다.
신분증 확인의 실효성 자체도 논란거리다. 지난해 9월부터 수기명부에 이름이 아닌 거주지를 시군구까지 명시하도록 바뀌면서 신분증으로 명부의 신뢰성을 파악하지 못하게 된 상황이지만 규정은 그대로 남아있다. 권헌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신분증 확인하는 절차가 최소한의 신뢰성 확보하기 위한 측면이 있지만 개인정보가 과도하게 노출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방역 당국 관계자는 “제도상 허점은 보완해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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