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총장직 거는 건 與가 바라는일…檢, 중수청 앞 자멸할수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26일 11시 43분


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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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권을 전면 박탈하고 검찰을 기소와 공소 유지 전담기관으로 축소 개편하는 여권의 ‘중대범죄수사청’ 신설 계획이 여당 당론으로 확정되는 수순으로 가면서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국가 형사사법체계의 근간이었던 검찰이 존폐의 기로에 섰다.

더불어민주당의 복안대로 3월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되고 6월에 통과될 경우 검찰의 직접 수사권이 남아 있는 ‘6대 범죄’ 수사까지 중수청이 넘겨받음으로써 검찰의 수사 기능은 전부 없어지게 된다. 불과 작년까지 모든 범죄에 대한 직접 수사권은 물론 경찰에 대한 수사 지휘권, 영장 청구권, 기소권을 보유하고서 국가 형벌권을 총지휘했던 검사가 범죄 수사에서 사실상 완전 배제되는 것이다.

검찰이 지금 상황을 심각하게 볼 수밖에 없는 것은 청와대와 여권 내부의 ‘속도 조절론’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검찰개혁 특위를 중심으로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추진에 더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임기 말 당청관계에서 민주당이 주도권을 쥐려는 상황이 확연해지고 있는 가운데 ‘감찰개혁 시즌2’의 핵심인 중수청 설립에 대해서도 친문 핵심의 의지가 강경하게 표출되고 있다.

결정적으로 176석의 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범여권 정당들과 힘을 합쳐 법안 통과를 밀어붙이면 국회에서 이를 막기가 어렵다는 게 검찰의 고민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비롯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과 법안 개정 등 고비마다 국민의힘이 반대했지만 다수의 힘을 이용한 여권의 폭주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수뇌부는 민주당 검찰개혁 특위 논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대응 방안 마련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검찰 일각에서는 조직의 명운이 걸린 일인 만큼 윤 총장이 이번에는 직(職)을 걸고서라도 정권에 결연하게 맞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윤 총장이 직접 움직인다면 민주당이 중수청 신설과 검찰 수사권 완전 폐지 계획을 당론으로 확정할 때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윤 총장이 정권에 맞서기 위해 사표를 던지는 것은 조직 수호를 위해 몸을 던진다는 ‘명분’은 좋지만 윤 총장을 하루라도 빨리 교체하고 싶어 하는 여권의 의도에 말려드는 패착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개혁 시즌2’를 둘러싼 극한 대결 국면에서 윤 총장이 사퇴하는 것은 전쟁이 한창일 때 장수를 잃어버리는 혼돈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어서다.

고검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만약 총장 부재로 검찰 지휘부가 공백 상태가 돼버린다면 검찰은 친정부, 반정부 검사들로 사분오열돼 외부에 총 한 방 못 쏴보고 자멸해 버릴 수도 있다”며 “총장이 몸을 던지겠다는 결의는 필요하나 그렇다고 사표를 함부로 던지는 것은 수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될 수 있는 만큼 위기일수록 신중히 처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사 시 때가 됐을 때 윤 총장이 전면에 나서 진두지휘하되 직(職)을 거는 언행은 삼가야 한다는 주문인 것이다.

특히 형사사법 체계의 구조를 완전히 뒤바꾸는 이번 사안은 국가적으로는 매우 중대한 의미가 있지만 일반 국민들은 검찰이 수사권을 갖든 말든 크게 영향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한 대국민 설득 작업이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이 범죄로부터 보호받는 안전한 사회가 되는 것과 검찰이 수사권을 보유하는 것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해 검찰이 아닌 시민의 입장에서 피부에 와 닿도록 국민 설득을 하지 못한다면 검찰에게는 더 힘든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검찰이 간판을 내리냐마느냐의 문제인 중수청 신설은 검사 개개인의 인생행로가 급변하는 일이기도 한 만큼 일선 검사들도 이번 사안을 지휘부에만 맡겨둬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검찰 내부에서 확산되고 있다. 조직이 풍전등화에 처한 상황에서 모든 구성원들이 직접 일어서지 않고서는 여권의 검찰 해체 시도를 막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 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검찰이 그동안 많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국민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점을 국민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핵심적인 과제가 아닐까 싶다”라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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