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완전히 폐지하는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법안 발의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외국 제도를 일부만 인용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참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검찰 내부 목소리가 나왔다.
법안 발의를 앞두고 여당을 중심으로 수사-기소 분리가 세계적인 추세라는 주장이 이어지자,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들의 체계가 어떤지 제대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반박이 나온 셈이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구승모 대검찰청 국제협력담당관(46·사법연수원 31기)은 이날 오후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주요 각국 검찰의 중대범죄 수사’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제도를 개선함에 있어 외국 제도를 살펴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면서도 “외국의 제도를 전체적으로 보지 않고 제도의 일부분만 인용하거나 법조문만 인용해 그 의미가 왜곡되어 인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요 국가들의 중대사건 수사에 관해 각국 검찰청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며 미국과 영국, 독일과 일본의 수사 체계를 정리한 파일을 게시했다.
◇미국, 연방검사 수사개시 결정권한 가져…지방검찰청 직접수사 가능
구 담당관이 올린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연방검사가 수사개시 결정권한을 가지고 처음부터 연방수사관들과 긴밀히 협의하면서 수사를 진행한다.
미국 법무부 연방검사 매뉴얼은 “연방검사장이 연방형사법에 관해 전권을 가지며, 연방범죄를 직접수사하거나 또는 연방수사기관에 수사착수 지시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주 검찰청의 경우 형사사건의 항소와 주 전역에 걸친 사건 등 지방검찰청에서 취급하기 어려운 복잡한 범죄들을 관할한다. 법인 관련 범죄와 사이버 범죄, 환경범죄, 인신매매 범죄 등이다.
이를테면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주 검찰총장이 주내 카운티 사법경찰관들에 대한 직접 감독 권한을 가지고, 사법경찰관에게 범죄수사 및 수사방법을 지시할 수 있다.
지방검찰청의 경우 직접수사가 가능하다. 각 지방검찰청마다 별도의 수사국을 두고 가장 민감하고 복잡한 사건을 검찰청에서 직접 인지하여 수사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9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세금정산내역 공개거부 및 세금사기 의혹 등에 대한 맨해튼 지방검찰청의 직접 수사가 대표 사례다.
전국 지방검사연합회에서 마련한 전국 검찰규준은 검사는 수사개시 권한이 있어야 하다고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아울러 해당 규준에는 이해충돌 사건이나 경찰의 부적절한 수사 사건 등 검사의 직접수사가 필요한 경우도 언급돼있다.
◇검찰이 모든 수사권한 가진 독일…일본은 부패범죄 등 직접수사
독일은 검찰이 수사의 주자재로서 수사개시권과 지휘권, 종결권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모든 수사권은 검찰에 있으며, 경찰은 조사를 수행할 뿐이지 모든 수사사항은 검사가 모두 검토하고 결정하는 구조다.
독일 검찰의 수사 근거는 법으로도 명시되어 있다. 독일 형사소송법은 “검사는 직접 수사를 하거나 경찰에게 수사를 하도록 요구할 수 있고, 경찰은 검사의 지시를 이행할 의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중대사건의 경우 수사 착수단계부터 경찰을 직접 지휘하는 형식으로 수사에 깊이 관여한다. 또 중대사건 수사를 위한 중점검찰청을 두고 있다.
일본도 검찰이 직접수사를 할 수 있다. 일본 형사소송법은 “검찰관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스스로 범죄를 수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 검찰은 이를 근거로 부패범죄와 기업범죄, 탈세·금융범죄 등에 대해 특별수사부 3곳과 특별형사부 10곳을 두어 직접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 법무성 홈페이지에는 ‘부패사건, 기업범죄 등에 대한 검찰의 독자(직접)수사는 정치·경제의 어둠에 숨어있는 거악을 검거적발하여 국가의 건전한 발전에 일조하는 검찰청의 중요한 일’이라고 기재되어 있기도 하다.
◇수사-기소 분리된 영국…중대사건은 중대범죄수사청이 맡아
영국의 경우 1985년 영국 검찰이 창설된 이후 일반 사건은 수사와 기소·공소 유지 기능이 분리됐다. 경찰의 수사진행 과정에 검사가 법률조언을 하고, 검사가 기소여부 결정하는 방식이다.
중대사건은 1988년 창설된 중대범죄수사청이 맡는다. 검사와 수사관이 하나의 기관에서 처음부터 함께 수사하여 기소 후 공판까지 담당하는 구조다.
중대범죄에 더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검사와 수사관이 초기부터 협력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한 지점이다. 수사개시부터 공판을 염두해두고 검사가 참여하도록 해놓은 것이다.
영국 중대범죄수사청 도입에 결정적 계기가 된 ‘로스킬 보고서’에는 “수사 단계에서 신문내용 구성에 개입한 사람이 기소를 담당해야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언급돼있기도 하다.
구 담당관은 “수사는 수사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범죄사실에 대한 증거를 적법하게 취득해 유죄선고를 받아내는 것이 목표”라며 “복잡한 중대범죄의 수사에서는 수사단계부터 공소유지를 염두에 두고 수사하지 않으면 유죄선고를 받기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주요 국가들이 중대범죄에 있어서는 최대한 유기적으로 수사와 기소를 통합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부디 형사사법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정하는 논의를 하면서 정확하지 않은 사실에 기초하여 중대한 논의가 성급히 결정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대검은 검찰의 수사기능 완전 폐지를 골자로 한 여당의 중대범죄수사청법 제정안에 대해 내부 검토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대검은 다음달 2일까지 일선청 의견을 취합한 뒤 법무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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