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사연구가 심정섭 씨
임업조합 문서 본보에 첫 공개
“거금 투자해 진도 땅의 25% 차지”
국권을 일제에 넘긴 ‘을사오적’ 가운데 한 명인 이완용 등 친일파들이 전남 진도에 대규모 산림을 운영하며 재산을 불린 것을 입증하는 문서가 공개됐다.
3·1절 102주년을 맞아 독립운동사연구가인 심정섭 씨(78·광주 북구 매곡동)는 1일 조선 귀족 임업조합 보식원 문서를 본보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일제는 1910년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한 뒤 조선 귀족 76명을 발표했다. 귀족 작위를 받은 사람들은 황실 혈족이거나 한일강제병합에 공을 인정받은 자들이었다. 이들은 공작(공족), 후작, 백작, 자작, 남작 작위를 받았다.
귀족 작위 수여자는 한일강제병합에서 일제에 공헌한 경술국적(庚戌國賊) 등 매국노 15명과 대한제국 황실 및 종친, 관료 등 61명이었다. 76명 가운데 8명은 작위를 거부하거나 반납했고, 형조판서를 지냈던 독립운동가 김석진(1847∼1910)은 자결했다.
매국노들은 귀족 작위와 함께 거액의 은사금(恩賜金)을 받았다. 이완용과 박영효, 윤덕영, 윤택영 등 친일파는 1913년 식림사업(植林事業)과 농장 경영을 명분으로 임업조합 보식원을 창립했다. 이들이 보식원을 만든 것은 경제적 부를 쌓기 위해서였다.
이완용은 1905년 고종을 협박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제에 넘기는 을사늑약을 주도한 뒤 1910년 총리대신으로 일제와 한일강제병합을 체결해 최악의 매국노로 평가받는다.
‘진도군지’에는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가 1916년 이완용이 진도 보식원을 답사했다는 것을 기사화했다고 기록돼 있다. 또 매일신보가 1917년 이완용이 진도 보식원 면적을 500만 m²에서 1억909만 m²(109.09km²)로 확장한 것을 기사화했다고 적혀 있다. 이완용은 보식원 확장에 당시 10만 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했다. 이완용의 보식원 토지는 진도 전체 땅 440.11km²의 24.7%를 차지한다.
심 씨가 공개한 보식원 문서는 1918년 3월 10일 보식원이 진도읍에 살고 있던 이모 씨에게 준 임명장이다. 가로 19.5cm, 세로 27.5cm 크기의 임명장에는 이 씨를 보식원 진도사업구 남동리 임야보호조합 간사로 지정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박주언 진도문화원장(78)은 이완용의 보식원 운영 목적을 재산 불리기로 규정했다. 그는 “진도군 지산면에 아직 이완용과 보식원 명의 임야가 있다는 말이 있다”며 “이완용 명의 땅에 대한 실체 파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 씨는 1970년대 외할아버지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독립운동가 조경한 선생(1900∼1993)을 모시고 진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고 했다. 심 씨는 당시 진도에서 만난 동양화가 의재 허백련 선생으로부터 “일제가 진도에 있던 울창한 해송을 선박 제조에 쓰려고 수탈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심 씨는 “친일파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는 욕심에 1929년 재단법인 창복회를 만들 정도로 재산 축적에 혈안이 됐다”면서 “보식원뿐 아니라 친일파가 축적한 재산은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라도 꼭 찾아서 국고로 환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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