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때문에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도입해서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을 망가뜨리려고 하는 게 분명하다.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 내가 그만둬야 멈출 것이다.”
대구고검 등을 방문한 3일 윤석열 검찰총장은 주변에 총장직 사의를 시사하며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윤 총장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나를 징계할 때까지만 해도 중수청 얘기는 없지 않았느냐”고도 했다고 한다. 윤 총장과 가까운 인사는 “윤 총장이 곧 그만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윤 총장은 4일 오전 휴가를 내 이르면 이날 사의를 표명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 “힘 있는 자 원칙대로 처벌하는 게 檢의 책무”
윤 총장이 일선 검찰청을 찾아 검사들을 격려한 건 4개월여 만이다. 윤 총장은 지난해 10월 대전고검과 지검을 찾아 검사들과 간담회를 했지만 뒤이은 추 전 장관의 징계 청구 등으로 지역 검찰청 방문을 중단했다.
윤 총장은 간담회 전 기자들에게 “(대구는) 제가 27년 전 늦깎이 검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초임지였다. 몇 년 전 어려웠던 시기에 2년간 저를 또 따뜻하게 품어줬던 고장”이라며 “떠나고 5년 만에 왔더니 정말 감회가 특별하고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윤 총장은 이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부패완판(부정부패가 완전히 판치는 것)”이라고 하는 등 여당이 추진 중인 중수청 신설 법안에 대해 다시 한번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부패완판’은 윤 총장이 직접 만든 표현이라고 한다.
윤 총장이 언론 인터뷰와 입장문을 통해 이 같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자 윤 총장 주변에서는 “지금부터는 윤 총장이 언제든지 사의를 표명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엄중한 상황”이라는 말이 나왔다.
윤 총장은 3일 검사들과의 간담회에서 “공정한 검찰, 국민의 검찰로 나아가는 것이 검찰개혁의 방향”이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공정한 검찰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억울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고 국민의 검찰은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지 말고 힘 있는 자도 원칙대로 처벌해 상대적 약자인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라며 “이는 (공직자의) 헌법상 책무”라고 강조했다.
윤 총장은 여당의 중수청 신설 등 ‘검찰 직접 수사권 폐지’ 입법 움직임에 대해서도 “수사지휘나 수사가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송만 하는 건 검찰의 폐지나 다름없다”며 “검찰 수사권이 폐지되면 재판 과정에 대응하기 어려워지고, 각 분야의 지능화, 조직화된 부패를 처벌할 수 없게 된다”고 했다. 윤 총장은 “거론되는 제도들이 얼마나 부정확하게 소개되고 있는지 국민들에게 올바른 설명을 드리는 것이 공직자의 도리라고 생각했다”며 언론 인터뷰를 하게 된 배경도 밝혔다.
윤 총장은 이날 검사들과 3시간가량 간담회를 하며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해서 여러 가지로 국가에 도움이 됐다. 앞으로도 이런 수사를 해야 한다. ‘국민의 검찰’은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지 말고 힘 있는 자도 원칙대로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검사들은 “연작처당(燕雀處堂·편안한 생활에 젖어 위험이 닥쳐오는 줄 모르고 경각심을 갖지 않는 것)”이라며 “나중에 지능범죄가 창궐해 국가의 근간이 뒤흔들릴 때 비로소 집이 불탄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바로잡기에) 늦을 것 같아 걱정이다”라고 우려를 나타냈다고 한다. “갑자기 이런 법안이 추진되는 속뜻이 궁금하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인 검사들도 있었다.
○ “정치 생각 있느냐” 묻자 “드릴 말씀 아니다”
윤 총장은 간담회 전 기자들과 5분간 대화하며 “부정부패에 대한 강력한 대응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고 국가와 정부의 헌법상 의무”라고 하는 등 ‘국민’이란 단어를 4번에 걸쳐 강조했다.
윤 총장은 ‘중수청 반대를 위해 총장직에서 사퇴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지금은 그런 말씀을 드리기가 어렵다”고 했다. ‘정치할 생각이 있느냐’란 질문에는 “이 자리에서 드릴 말씀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윤 총장의 방문을 앞두고 대구고검 청사 앞에는 취재진뿐만 아니라 윤 총장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시민들이 동시에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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