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전격적으로 중도 사퇴한 직접적인 이유는 여권이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전제로 추진하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신설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다. 존립의 위기에 처한 검찰조직을 지키기 위해 총장이 몸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근원적으로는 2019년 총장 임명 직후 벌인 ‘조국 수사’를 계기로 여권의 전방위적인 퇴진 압박이 지속되면서 윤 총장이 검찰 지휘권에 대한 한계를 절감한 탓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당이 국회에서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여당이 추진하는 중수청 신설 법안은 시기만 문제일 뿐 보수 야당이나 검찰이 국회통과를 막을 방법은 없는 게 현실이다. 윤 총장도 이런 한계 속에서 검찰조직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안으로 수장이 직을 던지는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윤 총장으로서도 검찰조직이 사라질 때의 마지막 총장이라는 오명을 쓰느니 총장직을 과감히 던짐으로써 ‘조직을 위해 산화했다’는 명분을 쌓을 수 있다. 윤 총장이 4일 사퇴 발언에서 “검찰에서의 제 역할은 지금, 이제까지다”라고 한 것도 수장으로서 검찰 해체를 막으려는 마지막 몸부림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윤 총장의 대선 출마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검사 퇴직 후 1년간 공직 선거에 출마할 수 없도록 한 검찰청법 개정안을 여권이 발의한 것도 윤 총장의 조기 사퇴를 결단한 배경으로 꼽힌다. 차기 대선 출마를 예단할 순 없지만 만일 총장직을 유지하면서 우물쭈물하는 사이 국회에서 ‘윤 총장 출마 방지법’이 통과돼 버리면 윤 총장은 나중에 지지율이 높아 대선에 나오고 싶어도 출마할 수 없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검찰의 수장으로서 조직이 없어지는 것을 몸으로라도 막아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윤 총장은 과거 검사 시절부터 그랬듯 좌고우면하거나 위축되지 않고 정면 승부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는 차기 대선까지 1년이 남은 지금 총장직을 사퇴하는 것이 향후 윤 총장의 정치적 활로를 열어나가는 데 극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을 수 있다.
윤 총장의 중도 사퇴는 여권의 검찰개혁 등 주요 현안과 4월 재·보궐선거, 차기 대선 구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게 됐다. 당초 이달 중수청 신설 법안을 발의할 방침이던 여권으로서는 셈법이 복잡해졌다. 논란과 반대를 무릅쓰고 검찰 해체를 계속 추진할지, 아니면 중수청 추진을 잠시 접어두고 차기 총장 인선을 통한 검찰 장악에 나설지 등 정국을 풀어갈 경우의 수가 늘었기 때문이다.
윤 총장이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정면 반발하며 중도 사퇴한 만큼 여권이 중수청 신설을 추진하면 할수록 재보선이 ‘윤석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여당에게는 부담이다. 그럼에도 권력기관 중에 유일하게 정권에 반기를 들었던 윤 총장이 자리를 떠남으로써 여권에게는 선택지가 넓어졌다. 차기 검찰총장 인선에서 손발이 잘 맞는 친여 성향의 간부를 택함으로써 검찰조직을 여권의 영향력 아래로 둘 여지가 커졌고,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계속 추진할 경우에는 재·보선 이후 등 적절한 시기에 법안을 통과시키고 시행 유예기간을 조절해 검찰을 축소 개편할 수도 있다. 윤 총장의 의도대로 여권이 검찰 수사권 완전 폐지에 대한 속도를 늦추거나 백지화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계속 추진할 경우에는 수뇌부 공백을 맞은 검찰조직이 혼란에 빠져 정권의 의도대로 공중분해의 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런 가운데서도 차기 대권 구심점이 없는 야권에 윤 총장이 새로운 중심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을 경우에는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등 보수 야권이 결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윤 총장이 당장 대선에 등판하지 않더라도 그의 모든 행보가 차기 대선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대선 후보 부재로 활기가 없는 보수 야권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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