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을 맞을 권한이 없는 사람이 접종 대상자 명단에 올라 있어도 이를 걸러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요양병원이 마음먹고 속이면 보건소에서는 알 길이 없어요.”
지난달 26일 경기 동두천시의 한 요양병원에서 ‘새치기 접종’ 논란이 일었다. 백신 우선접종 대상자가 아닌 병원 이사장의 친척 등 10명이 백신을 맞은 것이다. 이 사건은 익명의 제보자 덕분에 알려졌다. 그전까지 질병관리청은 ‘관할 보건소가 기관별 접종 대상자를 최종 승인하기 때문에 부정 접종은 있을 수 없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접종 시작 첫날부터 새치기 접종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동두천시 보건소 관계자는 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난감함을 토로했다. ‘코로나19 예방접종사업지침’에 따라 보건소가 관내 요양병원이 수립한 접종 대상자 현황을 최종 확인하게 돼 있는 건 맞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일일이 확인할 순 없다 보니 요양병원이 올린 계획이 대부분 그대로 승인된다는 설명이었다. 동두천시의 경우 지역에 있는 요양병원·시설이 40곳에 이른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대상자는 총 1736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진짜 종사자가 누구인지 일일이 가려내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정부의 백신 관리 감독 시스템이 이론적으로만 완벽한 탁상공론이란 지적도 나온다. 백신이라는 소중한 공공재는 ‘믿을 수 있고 빈틈없는 시스템’에 의해 관리돼야 함에도 사실상 요양병원 관계자들의 ‘양심’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란 것이다. 실제 동두천에서 발생한 새치기 접종 사례는 차분하게 자신의 접종 순서를 기다리던 대다수 국민에게 허탈감을 안겨줬다. 정부의 방역과 백신 관리에 대한 사회적 신뢰 역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 아르헨티나에서는 보건장관의 지인이 장관과의 친분을 이용해 자신의 순서 전에 백신을 맞은 사실이 알려져 수천 명이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기 전 정부 관계자들은 “접종부터 이상 반응 모니터링까지 시스템화했기 때문에 새치기 접종과 같은 일은 전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는 정부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이제라도 정부가 현장 상황을 꼼꼼히 반영해 백신관리 시스템을 가동해야 새치기 접종을 막고 국가 방역에 대한 신뢰를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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