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박종철 열사 31주기를 맞이해 당시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현 정부의 권력기관 개편방안을 발표하면서 검찰은 특수사건(경제, 금융 등)을 제외하고는 2차적·보충적 수사만을 하도록 검찰개혁안을 내놓은 바 있다. 이후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 발표, 경찰청 내 국가수사본부(국수본) 설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신설됐다. 이제는 여당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거창한 구호와 함께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주장하면서 완전한 수사·기소 분리 법안까지 제출한 상태다.》
○ 포퓰리즘 아닌 ‘인권보장’ 관점서 봐야
여당 의원들이 만든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신설 법안 등에 따르면 검사는 수사도, 수사 지휘도 하지 못하고 공소관으로 기소만 담당한다. 여권에선 영미법을 그 근거로 드는데 그러나 이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법이다. 영미법계 국가는 경찰이 초동수사만 담당하기 때문에 검찰 통제의 필요성이 크지 않고, 경찰이 검사의 법률적 판단을 자발적으로 따른다는 점은 말하지 않는다. 여당이 수사·기소 분리의 모범 사례로 든 영국의 중대비리수사청(SFO)조차도 중요 부패사건 등에 대한 수사·기소·공소 유지를 모두 담당하고 있다. 결국 사법체계가 다른 국가에서 경찰에 유리한 부분만 짜깁기해 발췌한 것에 불과하다.
물론 국민 권익 보호와 효율적인 수사시스템 구축을 위해 제도를 개선하자는 취지에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물론이고 집권 여당까지 합세해 수사·기소 분리를 외치고 있는 현재의 논의 과정은 분명 본질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일부 시민도 검찰 해체를 반드시 쟁취해야 할 필연적인 가치로 오해하는 것 같다. 그러나 형사사법 절차 개혁은 수사·기소 분리를 통한 검경 간 권력 분점 내지 검찰 해체가 아니라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형사사법 절차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즉, 국민의 인권 보장을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 하는 ‘법적 정의’의 관점에서 바라봐야지 정치적 포퓰리즘의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 통제받지 않는 수사기관만 늘어날 우려
우선 수사·기소 분리, 별도의 수사기관 신설을 통한 외연 확장이 형사사법 절차 개혁 완수를 위한 필수 불가결의 조건으로 거론되고 있는 현상은 매우 우려스럽다. 가령 국수본, 공수처 이외에 관할이 중첩되는 별도의 수사기관, 예컨대 중수청을 설치할 경우 발생할 문제점을 살펴보자.
첫째, 수사권이 이원화(二元化)되어 필연적으로 수사권의 충돌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인권을 다루는 국가기관의 업무에 사기업과 같은 경쟁의 원리를 도입할 수 있는 것인지, 이미 권력을 가진 기관에 더 큰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국민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게다가 국가정보원 직원이나 국세청 공무원 등 특별사법경찰마저 검사의 사법적 통제를 벗어난다면 형사사법의 불균형으로 인해 빚어질 혼란을 과연 누가 책임질 것인가.
둘째, 국수본은 물론 중수청에 독자적인 수사권을 부여하게 되면 그 수사권의 귀속 주체는 개개의 수사관이 아니라 그 기관의 장이 될 수밖에 없다(그 기관의 장만이 단독 관청이므로). 수사권을 단독 관청인 검사 이외에 행정기관으로서의 ‘기관’ 전체에 부여해 수사 권력을 전격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국민의 일상에 밀착해 있는 경찰의 권력은 아무리 작은 권력이라도 국민에게는 더 크게 피부에 와 닿는 것이 현실인데,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완전히 배제한 채 수사권의 주체를 사실상 무제한으로 확대하는 것이 인권 보장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백 사건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수사에 대한 검사의 사법적 통제마저 포기한다면 수사에 있어 인권침해 위협을 줄이기 위해 탄생한 검사제도의 존재 가치는 무의미해진다.
검찰개혁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성 및 중립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지 이와 상관관계가 없는 수사·기소 분리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국수본에 추가로 중수청을 신설할 경우 사법 통제는 없고 수사기관들만 신설해 수사 총량만 잔뜩 늘려 놓은 격이 되기 때문이다. 현 정권의 비리를 수사했다는 이유로 검찰총장이 사퇴 당하면서 7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검찰도 해체 수순을 밟는 마당에 앞으로 어느 기구가 감히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고 기소하겠는가.
○ 대륙법-영미법 체계 중 모델부터 정해야
국수본이나 공수처 내지 중수청은 ‘선량한 검사 및 수사관으로 구성된 기구’가 되어 ‘민주개혁 20년’을 함께해 나갈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사와 기소, 특히 부패범죄 등 중대범죄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담당하는 기관은 ‘선량하지 않은 권력’을 전제로 두고 설계되어야 한다. 선량하지 않은 세력 또는 우리 편이 아닌 세력이 집권할 경우에도 형사사법체계는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법률이론적인 시각에서 현재 논의되는 수사·기소 분리 논란은 수사는 검찰이 수사의 주재자의 역할을 담당하는 대륙법 체계를 취하고 있는 반면, 재판은 공판중심주의를 바탕으로 한 영미법 체계를 따르는 데서 발생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논의의 전제조건으로 우리나라 형사사법절차를 영미법 체계로 할 것인지 아니면 대륙법 체계로 할 것인지를 먼저 결정한 후, 영미법 체계로 변경하고자 한다면 자치경찰을 전제로 수사기관을 분산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반면 대륙법 체계를 고수한다면 새로운 기구의 신설보다는 ‘준사법기관’으로서 검찰 본연의 역할을 회복시키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경찰은 원칙적으로 직접 수사를, 검사는 수사 지휘를 통해 경찰에 대한 사법적 통제를 담당하고, 배심원 및 법원이 최종적인 판단을 담당하는 형사사법체계가 국민의 인권보호에 가장 간명하면서도 올바른 방법으로 보인다. 수사기관을 쪼개고, 외연만 부풀리는 식의 개혁은 범죄자에게만 유리할 뿐 오히려 국가의 사정 능력이나 부패범죄 등 중대범죄의 수사를 망가뜨리는 길이라는 점을 경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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