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오전 6시 13분경 경기 시흥시 과림동의 한 농지 앞에 조경업체 직원 12명을 태운 노란색 승합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직원들은 구석에 수북이 쌓여 있던 ‘에메랄드그린’ 나무 묘목을 5025m² 규모의 밭에 옮겨심기 시작했다. 해당 조경업체 관계자는 “신분을 밝히지 않은 50대 남성의 의뢰로 이틀간 작업했다. ‘준비가 돼 있으니 가서 심기만 해달라’고 했다. 잔디나 꽃을 심는 경우는 있지만 나무를 다 준비해 놓고 심기만 해달라는 건 처음 받는 의뢰였다”고 전했다.
이 농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경기지역본부 3급 직원 A 씨가 지난해 2월 취득한 땅이다. A 씨는 시흥시에 제출한 농업경영계획서의 ‘노동력 확보 방안’ 항목에 ‘자기 노동력’이라고 표기했다. 스스로 농사를 짓겠다고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해 놓고 실제로는 조경 인부들을 동원해 묘목을 심은 것이다.
8일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실이 경기 시흥시와 광명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A 씨 등 LH 직원들은 허위 내용이 담긴 농업경영계획서를 지자체에 낸 것으로 파악됐다. A 씨 등은 재배 작물 칸에 ‘벼’ ‘고구마’ ‘옥수수’ 등을 기입했지만 실제론 심기에 수월하고 별다른 관리를 하지 않아도 돼 보상받기에 유리한 용버들 등 묘목을 15∼25cm 간격으로 빽빽하게 심었다. 한 토지 감정평가사는 “묘목을 심어두는 것은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구입하는 사람들이 옮겨 심는 비용 등을 보상받기 위해 자주 쓰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A 씨 등 LH 직원들은 노동력 확보 방안에 ‘일부 고용’ ‘일부 위탁’이 아닌 같은 세대 세대원의 노동력만으로 영농하려는 경우에 해당하는 ‘자기 노동력’ 칸에 해당 표시를 했다. 과림동 농지 인근의 한 업체 직원은 “지난해부터 인부들이 이따금 와서 밭을 가는 작업을 했지만 땅 주인이 직접 오는 것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토지 전문 변호사들은 “자기 노동으로 신고해야 농지 취득이 수월하다. 인부 고용이나 위탁으로 표시할 경우 관할 지자체에서 소작 여부 등에 대한 조사를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농 경력이 부풀려진 정황도 있다. A 씨는 2017년 8월 광명시 옥길동의 526m² 규모 농지를 매입하면서 자신의 영농 경력을 7년으로, 아내에 대해선 1년으로 표기했다. 하지만 A 씨는 1989년 LH의 전신인 한국토지공사에 입사해 토지 분양 관련 상담 업무 등을 맡아온 33년 차 직장인이어서 7년간 농사를 지었다는 주장은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인근 주민은 “A 씨는 1년에 5, 6번 와서 잡초 뽑고 제초제 뿌리는 정도만 작업했고, 아내라는 사람은 처음 용버들을 심을 때 이후로 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강정욱 변호사는 “스스로 농사를 짓겠다고 해놓고 사람을 썼다면 허위 사실에 가깝다. 애초에 자가 농업을 이행할 생각 없이 신청했다면 부정한 방법으로 자격을 취득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농업경영계획서를 허위로 작성했다가 농지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사례도 있다. 대구지법은 지난해 6월 시세 차익을 얻을 목적으로 재배 작목을 ‘고추, 콩’으로 기재하고 향후 영농을 계속하겠다며 허위 기재한 혐의로 기소된 농업회사법인에 대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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