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상형 전자담배, 일반담배 독성의 5%”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0일 03시 00분


전자담배에 대한 오해와 진실

정유석 교수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담배로 옮겨갈 기회가 차단되면 흡연의 독과점이 고착화된다고 말한다. 정유석 교수 제공
정유석 교수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담배로 옮겨갈 기회가 차단되면 흡연의 독과점이 고착화된다고 말한다. 정유석 교수 제공
지난해 국내 담배 판매량은 35억9000만 갑으로 2019년보다 1억4000만 갑 늘었다. 2015년 정부가 담뱃값을 올린 뒤 4년 만의 증가다. 일반 담배 판매량은 32억1000만 갑으로 전년보다 4.8% 증가했다. 반면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량은 40만 포드(pod)로 전년의 1690만 포드에 비해 97.6% 줄었다. 액상형 전자담배를 피우다 일반 담배로 회귀한 사람이 많다고 해석될 수 있다.

20년 넘게 금연 운동을 해온 정유석 단국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57)에게는 아픈 소식이다. 정 교수는 금연 운동을 하는 의사로서는 ‘특이하게’ 액상형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덜 해롭다고 확신한다. 그 확신을 2019년 책 ‘전자담배 위기인가 기회인가’에서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풀어냈다.

최근 충남 천안 단국대병원에서 만난 그는 “담배를 없애지 못한다면 좀 더 안전한 담배로 (흡연자들이) 건너가게 할 필요가 있다”며 “액상형 전자담배가 연초담배(일반 담배)에 비해 1∼5%의 독성만 갖고 있다는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영국 공중보건국(PHE·Public Health England)이 2015년부터 매년 펴내는 ‘영국에서의 액상형 전자담배(Vaping in England: evidence update)’ 보고서는 ‘액상형 전자담배가 건강에 무해하지는 않지만 일반 담배보다 적어도 95%는 덜 해롭다’고 밝힌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담배 줄기나 뿌리에서 추출한 니코틴이 든 액상에 열을 가해 발생하는 증기(aerosol)를 빨아들이는 방식이다. 일반 담배 성분 중 인체에 매우 해로운 타르와 일산화탄소는 없다. PHE 보고서는 일반 담배가 내는 발암물질 등 유해 성분 일부가 액상형 전자담배에 있지만 그 비율은 매우 낮으며, 발암 가능성은 일반 담배의 0.5% 이하라고 발표했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궐련형 전자담배와는 다르다. 최근 유행하는 궐련형 전자담배는 흔히 가열담배(HNB·Heat Not Burn·태우지 않고 가열함)라고 부른다.

2019년 미국에서 액상형 전자담배 관련 급성 폐질환(EVALI)이 발생하자 한국 정부는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중단’을 강력히 권고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조사 결과 EVALI는 대마초 성분인 THC와 비타민E 아세테이트가 든 전자담배를 피운 사람이 대부분 걸렸다. 국내 액상형 전자담배에서는 검출되지 않은 성분이다. 하지만 사용 중단 권고 조치는 그대로다.

액상형 전자담배 효과에 대한 찬반이 공존하는 미국에서도 ‘개인에게는 덜 해롭다’는 연구가 나온다. 미국 과학기술의학한림원(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 Engineering, and Medicine)은 2018년 보고서 ‘액상형 전자담배의 공중보건 결과(Public Health Consequences of E-cigarettes)’에서 ‘일반 담배를 전자담배로 완전히 교체하면 다양한 독성물질과 발암물질 노출이 줄어든다’고 했다.

정 교수는 “미국은 ‘개인에게는 덜 해롭지만 청소년과 사회에 대한 장기적인 영향은 아직 모르기 때문에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담배와의 전쟁 중인데 새로운 적이 또 나타났다’는 프레임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액상형 전자담배를 금지하는 나라도 있다. 금연 효과에 대한 엇갈리는 연구 결과가 매년 나온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자담배도 건강에 해롭다면서 나온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건강에 미치는 잠재적 효과를 이해할 데이터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흡연자가 아닌 청소년이 전자담배를 피우면 나중에 일반 담배 흡연자가 될 확률이 2배로 늘어난다는 증거들이 나타난다고도 밝힌다.

정 교수의 임상 경험상 흡연자 100명 중 97명은 금연에 실패했다. 그의 문제의식은 ‘그럼 이들에게 가장 해로운 일반 담배를 다시 피우라고 할 것인가’였다. ‘담배를 못 끊겠으면 덜 해로운 걸로 바꾸세요’라고 해줘야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전자담배가 건강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공론의 장은 국내에 아직 없다. “일반 담배는 20년 된 디젤차고 액상형 전자담배는 하이브리드 최신형입니다. 저는 빨리 하이브리드로 바꾸자고 하는데 (정부 등에서는) ‘하이브리드에서도 매연은 나오잖아’ 하는 겁니다. 이러면 토론이 될 수 없죠.”

정 교수는 “정부나 독립 기관에서 연구 결과를 정확히 발표하고 판단은 국민에게 맡겨야 한다”며 “저 같은 사람 이야기와 반대 목소리가 균형을 이루며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액상형#전자담배#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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