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 땅 기획부동산 버젓이 영업… “지분 쪼개기 문제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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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 투기 의혹 확산]정부 “투기 엄단”에도 현장은 딴판

12일 정부의 3기 신도시 지구에 포함된 경기 광명시 가학동의 한 골목에 부동산업체의 홍보 전단이 붙어 있다. 부동산업체는 대부분
 광명·시흥 도심에 사무실을 둔 것으로 알려졌으며 홍보 전단은 논밭과 도로변 등을 가리지 않고 곳곳에 붙어 있었다. 광명=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12일 정부의 3기 신도시 지구에 포함된 경기 광명시 가학동의 한 골목에 부동산업체의 홍보 전단이 붙어 있다. 부동산업체는 대부분 광명·시흥 도심에 사무실을 둔 것으로 알려졌으며 홍보 전단은 논밭과 도로변 등을 가리지 않고 곳곳에 붙어 있었다. 광명=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우리 돈으로 대기업을 아예 인수할 수 없으니까 주식을 사는 거잖아요. 이것도 똑같은 거예요.”

12일 낮 서울 강남에 있는 A부동산업체 사무실. 상담실 한쪽 벽에는 큼지막한 경기 김포 지역 지도가 걸려 있었다. ‘투자 상담을 받으러 왔다’고 말하자 담당자는 “소액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지도에 있는 김포의 한 임야를 가리켰다. 전체를 매입하는 것이 아니라 지분을 사라고 권했다. 자신들이 매입해둔 이 땅 바로 인근에 대규모 개발이 예정돼 있어 추후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업체 관계자는 “본인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만 아니라면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

정부합동조사단은 11일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기획부동산’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소) 등 부동산 시장의 불공정 행위를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 분위기는 딴판이었다. 기획부동산 업체들은 암암리에 영업을 계속했고, 분양권 전매 거래를 취급하는 ‘떴다방’ 영업도 그대로였다.

○ 기획부동산 업체, 시흥서 김포로 무대만 옮겨

A업체는 2017년에는 경기 시흥시 과림동의 한 임야를 사들여 2018년까지 약 80명에게 쪼개기 판매했다. 이곳은 나무가 빽빽한 야산으로 투기 목적 외에는 구입한 이유를 찾기 힘든 땅이다. 인근 농민 허모 씨(61)는 “부동산업체 사람이 산자락에 외지 사람 대여섯을 한 번에 데려와서는 손짓발짓 연설을 하며 매입을 권유하는 모습을 자주 봤다”고 전했다. A업체는 이날도 “내일 당장이라도 함께 현장에 가서 직접 살펴볼 수 있다”고 했다. 광명·시흥 지역 투기에 앞장선 업체가 김포로 무대를 옮겨 똑같은 수법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과림동 주민들과 부동산업체 등에 따르면 이 일대에는 최근 몇 년 동안 기획부동산 투자로 의심되는 거래 사례가 속출했다. 정부합동조사단에 따르면 LH 직원 4명을 포함해 총 22명이 과림동의 1개 필지를 공동으로 매입한 사례도 있다. 이 일대 등기부등본을 확인해보니 수십 명이 지분을 쪼개 임야를 매입한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12일 과림동의 논밭 사이사이 위치한 낡은 건물들에는 ‘토지 창고 매입’ 등의 문구와 함께 전화번호를 적은 부동산업체 전단이 촘촘히 붙어 있었다. 이 업체들은 시흥·광명 시내에 사무실을 둔 공인중개사무소로 기획부동산 업체로 보기는 어려웠다. 이날 투자를 문의한 10곳 중 3곳은 “소액으로 토지 지분을 일부 매입하는 방법도 가능하다”고 했다.

○ 컨테이너에 사무실, 분양권 전매 중개도

정부가 ‘떴다방’을 부동산 시장의 불공정 행위로 콕 집어 언급한 다음 날에도 ‘떴다방’으로 보이는 업체들은 문을 닫지 않았다. 12일 시흥시에서도 아파트 공사현장 인근에 컨테이너를 가져다 두고 영업 활동을 하는 업체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 업체는 지금 공사 중인 아파트 매물을 문의하니 “일반분양은 끝났는데 2억 원 정도 더 낼 수 있으면 1년 뒤쯤 분양권을 가진 사람과 전매를 주선해줄 수 있다”면서 “입주 시기가 다가와 전매 제한이 풀린 뒤 거래가 이뤄지는 것이라 법적인 문제도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 컨테이너 내부에서는 공개된 곳에 게시돼 있어야 할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보이지 않았다. 이곳 말고는 따로 사무실도 없다고 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이 지역 현지 부동산들을 많이 알아서 정보는 자신 있다. 옮겨 다니면서 아파트도 하고 상가도 취급한다”고 했다.

단속 책임이 있는 시흥시 관계자는 “등록되지 않은 장소에서 자격 없는 사람이 중개 행위를 할 경우 ‘떴다방’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도 “다만 전매 거래를 주선해주겠다고 약속한 것만으로 중개 행위로 판단하기는 애매하다”고 했다. 한국부동산원 관계자는 “컨테이너 등 등록되지 않은 장소에서 일시적으로 영업하는 업체에서 이뤄진 계약은 무효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시흥=오승준 ohmygod@donga.com·김윤이 / 김태성 기자
#시흥 땅#기획부동산#지분 쪼개기#투기 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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