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내 일본의 절반이 사라진다…열도 충격에 빠뜨린 ‘마스다보고서’[서영아의 100세 카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4일 0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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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도시로 바뀌는 전국의 아파트 단지들
인구 감소 초고령화…일본의 가까운 미래상 보여준 ‘요코하마의 티벳’
‘평생자립’ 자세로 인생 최후의 터전 가꿔내는 와카바다이 노인들

2014년 5월 보고서 하나가 일본 열도를 충격에 빠뜨렸다. 마스다 히로야(增田寬也) 전 총무상이 이끄는 일본창성회의가 낸 일명 ‘마스다 보고서’다. 현재의 인구 감소 추세대로라면 2040년까지 일본의 절반, 896개 지방자치단체가 소멸한다는 경고를 담았다(이 내용을 정리한 책 ‘지방 소멸’은 한국에도 출간돼 있다). 인구 문제로 인한 쇠락과 소멸의 공포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보고서의 분석 기법에 따라 소위 ‘지방소멸위험지수’가 개발됐다. 한 지역의 가임여성(20¤39세) 인구를 65세 이상 인구로 나눈 값으로 0.5 미만이면 소멸위험 지역으로 분류된다. 인구의 유출·유입 등 다른 변수가 작동하지 않는 한 30년 뒤에는 해당 지역이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도쿄 23구(도심)에도 빈집 50여 만호
빈집이 늘면서 지방부터 ‘부(負)동산’화가 진행되는 일본이지만 인구가 쏠리는 대도시 집값은 상대적으로 견고해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총무성 발표는 놀라웠다. 전국의 빈집 846만 가구 중 81만 여 가구가 도쿄에 있었고, 이중 70%는 도심 23구내에 있었다(도쿄는 한국으로 치면 서울특별시와 비슷한 도심 23구와 경기도와 비슷한 ‘다마 지구’로 이뤄져 있다). 특히 23구중에서도 부촌(富村)으로 알려진 인구 92만 명인 세타가야(世田谷)구에서만 5만호가 빈집으로 밝혀져 충격을 더했다.

아사히신문은 그 이유로 고정자산세를 부담으로 느끼지 않는 가정이 많다는 점, 집값이 비싸니 젊은 세대는 살 엄두를 내지 못하고 부동산개발업자들은 고도 제한 때문에 매입을 꺼린다는 점을 꼽았다. 소유자가 고령인 경우 팔겠다는 판단을 하지 못하고 방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부촌은 부촌대로, 또 다른 이유로 빈집 위기를 겪는 셈이다.

○유령 도시화하는 일본의 아파트 단지들
인구가 줄면서 상권도 쇠퇴해 자유롭게 물건을 구할 수 없는 ‘쇼핑 난민’이 늘자 이들을 위한 이동식 상점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다나카 마사루 히로시마 시의회의원 블로그 캡처
인구가 줄면서 상권도 쇠퇴해 자유롭게 물건을 구할 수 없는 ‘쇼핑 난민’이 늘자 이들을 위한 이동식 상점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다나카 마사루 히로시마 시의회의원 블로그 캡처


보다 심각한 사회 문제는 유령 도시화하는 전국의 아파트 단지들이다. 아파트 단지는 1960년대부터 본격화된 고도 성장기에 주로 교외에 조성됐다. 마이카 마이홈 붐이 불면서 직장에서 좀 멀어도 녹지가 있고 쾌적하게 조성된 단지에 젊은 샐러리맨 가족이 몰려들었다. ‘살인적’이라는 일본의 출퇴근 전쟁도 이와 함께 시작됐다. 서구식 양변기를 사용하고 열쇠를 잠그고 출근하는 생활 스타일이 확산되며 ‘단지족(族)’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문제는 세월이다. 주민과 아파트가 함께 늙어가면서 슬럼화를 우려하는 상황이 됐다. 아파트 단지에서 젊은이들이 떠나고 상권도 사라지면서 ‘교통 약자’와 ‘쇼핑 난민’을 낳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쯤 되면 한국처럼 재건축을 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문이 들 텐데, 일본의 주택은 이미 용적률을 꽉 채워 지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재건축 비용을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 특히 주민이 고령이라면 몇 년에 걸친 재건축 과정을 견뎌낼 힘도, 건축비를 낼 경제력도 없다. 무엇보다 일본 전체 인구가 줄고 있다. 새로 건물을 지은들 받아줄 인구가 없는 것이다.

○활기 넘치는 ‘요코하마의 티벳’

와카바다이 단지의 전경. 녹지가 풍부하고 중심부에 상권과 편의시설이 모여 있어 살기좋은 단지로 손꼽혔다고 한다. 서영아 기자
와카바다이 단지의 전경. 녹지가 풍부하고 중심부에 상권과 편의시설이 모여 있어 살기좋은 단지로 손꼽혔다고 한다. 서영아 기자

인구는 줄어드는데 고령자 비중만 늘어난다면 삶의 터전은 어떻게 바뀔까.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2017년 경 이런 불안감에 정면에서 도전 중인 아파트 단지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1978년 조성된 가나가와 현 요코하마 시 와카바다이(若葉臺) 단지가 그곳이다. 27만평 부지에 6300여 호, 1만 4000여 명이 살고 있는데 주민의 43.7%가 65세 이상이다.

아침 10시경 찾은 와카바다이 단지는 활기가 넘쳤다. 중심부에 자리한 상점가에는 복장을 갖추고 모인 하이킹 팀이 인사 중이었고, 벌써 아침 골프 연습을 마치고 귀가하는 어르신들이 오갔다. 주3회 아침마다 100여 명이 폐교 운동장에서 그라운드 골프(골프와 게이트볼의 장점을 딴 스포츠)를 즐기는 장관이 벌어진단다.

한창때 주민은 2만 명을 넘었지만 지금은 주로 은퇴 세대들이 남았다. 3개, 2개였던 단지 내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각각 1개씩으로 줄었다.

○우리 삶의 터전은 우리가 가꾸고 지킨다
이곳에서 주민과 행정이 힘을 합친 ‘단지 재생’ 실험이 벌어지고 있었다. 건물도 사람도 늙었지만, 주민들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에 지지 않고 지속가능한 삶의 터전을 만들어내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입주 초기인 1980년대 자치회를 만들어 주민교류 사업에 적극 관여했던 젊은 부모들이 이제 고령자가 돼 ‘늙은’ 단지의 과제 해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자가(自家)를 보유하고 안정적인 연금을 받고 있다. “밖에서는 이곳을 ‘요코하마의 티벳’이라 부릅니다. 젊은 세대는 아이 키우기 좋고 노인들도 살기 편한 공동체라는 뜻이죠.” 10여 개의 자치회를 총괄하는 연합회 회장인 야마기시 히로키(70) 회장의 자랑이 이어졌다.

○남을 위해 일할 때 내가 빛난다

‘혼밥’하는 독거세대를 불러내기 위한 식당을 운영하는 스즈키씨(왼쪽)와 니시타이씨. 이웃을 위해 일하는 사람 특유의 생기가 넘쳤다. 서영아 기자
‘혼밥’하는 독거세대를 불러내기 위한 식당을 운영하는 스즈키씨(왼쪽)와 니시타이씨. 이웃을 위해 일하는 사람 특유의 생기가 넘쳤다. 서영아 기자


하나 둘 비게 된 상가에는 주민 편의시설이 들어섰다. 2년 전 문을 연 식당 ‘하루’는 단지에 사는 여성들이 자원봉사로 운영하며 ‘집 밥’을 제공한다. 식당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낸 스즈키 가즈코(72)씨와 니시타이 미사코(81) 씨는 “혼자 사는 분들을 밖으로 불러내자는 취지”라며 “밥은 같이 먹을 때 건강에도 좋다”고 말했다.

식당에는 생계가 아니라 보람을 위해 일하는 주민들로 북적인다. “매일 다른 메뉴를 600엔 정도에 제공합니다. 주부가 30여 명 모이다보니 각자 가진 특기가 있고, 그걸 살려 최대한 맛있는 식사를 만들죠.” 설명하는 두 사람에게서는 생기가 넘쳐났다. 사람은 나이와 무관하게 남을 위해 일할 때 빛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돌봄 받기 전에 돌봄 받을 일이 없도록 ‘예방’
지역 케어 플라자에서 관절운동 수업을 받는 주민들. 서영아 기자
지역 케어 플라자에서 관절운동 수업을 받는 주민들. 서영아 기자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간병 예방’ 시스템이다. 간병(介護·돌봄)을 잘할 시스템을 갖추기 이전에 남의 간병을 필요로 하는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예방’하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다. 핵심은 고령자의 외출과 활동을 촉진하는 것이다. 고령자들이 몸을 움직이고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도록 하는 각종 프로그램이 촘촘히 가동된다.

자치회가 운영하는 스포츠 문화클럽의 1700여 회원 중 60%를 고령자가 차지하고 있다. 이 클럽이 관리하는 야구장, 학교 교정, 테니스코트 이용자는 연인원 8만5000명에 달한다. 클럽은 운동회와 문화제, 연간 17회의 그라운드 골프대회 등을 열어 주민 교류의 장을 만든다.

요코하마 시가 운영하는 지역케어플라자는 간병 예방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런 노력의 결과 간병보험 적용을 인정받은 주민은 12%로 요코하마시 전체의 인정률 17.5%보다 크게 좋은 건강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고독사 방지 ‘6호 담당제’?
이 단지가 당초 젊고 일하는 세대 위주로 세워졌다는 점은 엘리베이터를 3층 단위로 서도록 설계한 데서도 드러난다. 12층 아파트의 1층·4층·7층·10층에만 엘리베이터 문이 설치돼 있는 것이다. 언젠가는 거동이 힘든 노인이 이곳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한 것이다. 주민들은 이런 단점을 ‘고독사 방지’시스템으로 둔갑시켰다. 같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한 층 두 가구씩, 세 개 층 6가구를 한 단위로 묶어 연락망을 구성했다. 혼자 사는 노인은 여행이나 장기 부재 시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알려야 한다.

○고령사회에서는 주택공사 역할도 바뀐다
과거 아파트 단지를 짓던 가나가와현 주택공급공사는 요즘 실버타운이나 요양원을 짓는다. 사진은 최근 문을 연 와카바다이 요양원. 가나가와현 주택공급공사 홉페이지 캡처
과거 아파트 단지를 짓던 가나가와현 주택공급공사는 요즘 실버타운이나 요양원을 짓는다. 사진은 최근 문을 연 와카바다이 요양원. 가나가와현 주택공급공사 홉페이지 캡처

단지 재생 사업에 한국으로 치면 토지주택공사(LH) 격인 ‘가나가와 현 주택공급공사’가 적극 참여한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70년대에 구릉지 밭과 잡목림을 개발해 아파트 단지를 건축했던 주택공사는 지금은 하나 둘 비어가는 점포를 주민들에게 내줘 육아 시설이니 식당 등으로 개조하는 작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었다.

주택공사가 상가에서 받아야 할 월세를 포기하면서까지 지역민들을 적극 돕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자체 연구 결과 이대로 가면 30년 뒤 단지 인구가 5000명이 된다는 추정치가 나왔는데, 자신들이 만든 아파트단지의 가치를 지키겠다는 얘기였다. 유령 도시가 되고 있는 다른 단지들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이자 자신들이 지어낸 아파트에 대한 궁극의 애프터서비스다.

재미있는 것은 고령 사회에서는 주택공급공사의 역할도 바뀌고 있었다는 점이다. 주택공급공사는 47개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 별로 각기 운영되는데, 가나가와 현 주택공급공사의 경우 지난해 창립 70주년을 맞았다.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 사업 외에 아파트 단지 재생 사업을 지원하고 고령자용 실버타운주택, 간병까지 해주는 본격적인 요양원을 5군데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세대 공존, 아기 엄마들을 모셔라
육아 공간 ‘소라마메’에 들른 아키야마 씨. 빈 점포를 개조해 만든 육아공간인 ‘소라마메’에서는 또래 엄마들을 만날 수 있어 즐겁다. 서영아 기자
육아 공간 ‘소라마메’에 들른 아키야마 씨. 빈 점포를 개조해 만든 육아공간인 ‘소라마메’에서는 또래 엄마들을 만날 수 있어 즐겁다. 서영아 기자

‘지속가능한 단지’를 위해 젊은 주민을 불러들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2014년 빈 점포를 이용해 육아세대를 위한 공간 ‘소라마메’가 문을 열었다. 이용자는 하루 100엔만 내면 이곳에서 아이를 놀게 하거나 점심을 먹거나 할 수 있다. 남편이 출장이 잦아 주로 3세 아들과 둘이 지낸다는 아키야마 시노(34)씨는 “지나가는 동네 어른들이 들러 아이들을 어르고 지나간다”며 “세대 간 교류가 되는 따뜻한 장소”라고 말한다. 최근 새로 이사 온 엄마들 중 3분의 1은 어린 시절 이곳에서 자란 사람들의 유턴이 많다고 한다.

○인생 최후를 익숙한 터전에서 지낼 수 있도록
와카바다이 케어플라자에서 공굴리기 게임을 하는 고령자. 나이가 들수록 몸을 움직이고 타인과 접촉하는 활동이 중요해진다. 서영아 기자.
와카바다이 케어플라자에서 공굴리기 게임을 하는 고령자. 나이가 들수록 몸을 움직이고 타인과 접촉하는 활동이 중요해진다. 서영아 기자.

소라마메 건너편에는 고령자 생활지원센터가 마련돼 있다. 월 500엔을 내면 정기적인 전화와 방문에 의한 안부 확인을 받을 수 있다. 단지 내 병원이 운영하는 방문간호 재택간병지원사업소가 병설됐다. 아직은 이용자가 거의 없지만 앞일을 생각해 시설을 갖췄다고 한다.

주민들은 “이곳을 인생 최후의 집으로 생각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스스로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고 말한다. ‘익숙한 곳에서 최후까지’는 일본 정부가 내건 슬로건이기도 하다.

○한국의 지방 소멸, ‘발등의 불’
마스다 보고서의 계산법을 사용해 한국고용정보원이 2019년 11월 내놓은 ‘한국의 지방소멸위험지수 2019’에 따르면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소멸위험 지역은 97곳으로 전체의 42.5%다. 특히 소멸위험이 높은 시군구는 경북 군위군과 의성군(각각 0.143)으로 나타났다. 전남은 지수 0.44로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유일하게 소멸위험 지역으로 분류됐다.

굳이 이런 통계가 아니어도 지방 소멸은 이미 발등의 불이다. 올해 대학입시에서는 정원 미달이 속출해 수능 성적 없이도 장학금을 주겠다는 학교마저 나타났다. ‘벚꽃 피는 순서로 지방대학들이 망할 것’이라는 속설이 현실화하고 있다. 앞으로가 더 큰 일인 것이 합계 출산율 1이 한 세대(30년)가 지나면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을 의미하는데, 2020년 한국은 0.84를 기록했다.

한국에서도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아파트단지들이 많다. 아직은 재건축을 통해 면적과 호수(戶數)를 늘린다는 기대감을 모으고 있지만 인구가 본격적으로 줄어들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기운은 있는데 할 일이 없다”는 한국 고령자들의 하소연을 떠올려보면 우리도 지역에서 할 일이 무엇인지 조금 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인생 후반, 더 중요해지는 ‘돈 건강 행복’

풍요로운 100세 인생을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돈과 건강, 그리고 행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갖춰지는 게 아니고 30~40대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100세 카페’에서는 특히 인생 2막을 잘 맞이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돈과 행복 이야기를 나눕니다. 초고령사회의 최일선을 걷는 일본 사례를 많은 참고로 삼고자 합니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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