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상형 전자담배를 바라보는 각국의 관점은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일반 담배(연초 담배)를 대체할 ‘금연의 징검다리’라는 시각부터 건강에 해로운 ‘또 하나의 담배’라는 지적까지 다양하다.
영국은 담뱃갑에 담배회사 로고도 제품명도 없고 담배판매점 진열대는 외부에서 볼 수 없도록 가려져 있다. 이처럼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게 담배를 규제하는 영국이지만 액상형 전자담배는 니코틴 보조제로 분류해 금연 도구로 활용한다. 유럽 꼴찌를 다투는 성인 흡연율(약 14%)을 2030년까지 ‘0’으로 만들겠다는 ‘스모크프리2030’ 정책의 주요 수단이기도 하다.
영국은 공중보건국(PHE) 국민보건서비스(NHS) 보건복지부(Dept. of Health and Social Care) 등 정부 차원에서 일반 담배 흡연자에게 액상형 전자담배로 바꿀 것을 권장한다. 액상형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덜 해롭다는 ‘사실’을 캠페인을 통해 꾸준히 알린다. 영국 최대 금연단체인 ASH(Action on Smoking & Health)도 ‘최악(일반 담배)보다는 차악(전자 담배)이 현실적으로 개인과 사회 건강에 유리하다’는 판단에서 정부 정책을 지지한다.
영국에서 액상형 전자담배는 소비세(20%)만 매긴다. 18세 미만에 대한 판매는 엄격히 금지되며 만약 적발되면 판매 중단 조치를 당한다. 액상 니코틴 농도가 mL당 20mg을 초과하면 일반 소비 제품으로 허가받지 못한다. 경고 문구는 제품 포장 겉면의 30%를 차지하도록 넣어야 하며 ‘건강에 더 좋다’ 같은 건강 관련 문구는 넣을 수 없다.
하지만 2018년 8월 영국 하원 과학기술위원회는 전자담배 관련 정책보고서를 발표해 ‘액상형 전자담배가 국민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간과되고 있다’며 규제를 더 완화하라고 정부에 권고했다. ‘일반 담배보다 덜 해롭다’고 광고할 수 있도록 하고 세금을 더 낮춰 가난한 흡연자의 접근을 쉽게 하며, 니코틴 농도 제한도 풀고 공공장소에서도 피울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영국만큼은 아니지만 일부 영연방국가도 비슷한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2025년까지 흡연율 5%를 목표로 하는 뉴질랜드는 지난해 ‘흡연자가 일반 담배보다 훨씬 덜 해로운 제품으로 전환하는 것을 돕기 위해’ 관련법을 개정했다. 뉴질랜드 보건부는 ‘베이핑 팩츠(Vaping Facts)’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해 액상형 전자담배가 무해하지는 않지만, 독성물질 함유량은 일반 담배보다 아주 낮은 수준이며 자신은 물론 주변의 건강을 덜 위태롭게 한다고 소개한다. 캐나다도 이와 같은 취지에서 2016년 관련법을 개정해 그동안 금지하던 액상형 전자담배를 합법화했다. 액상형 전자담배의 혜택과 위험성을 객관적으로 알리기 위한 새로운 규제의 틀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유럽연합(EU)은 2016년 이전까지만 해도 소속 28개국(당시 영국 포함) 가운데 절반가량은 액상형 전자담배를 금지하거나 사실상 금지했다. 금연 효과를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해 5월 EU 담배규제훈령(TPD·Tobacco Products Directive)에 흡연자 감소 차원에서 구체적인 액상형 전자담배 관련 조치를 소개하면서 흐름이 바뀌었다. 액상형 전자담배를 일반 담배와는 다르게 규제해야 할 제품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는 액상형 전자담배와 일반 담배의 상대적 위험성을 정부가 과학적으로 평가하는 법령을 만들었다. 노르웨이와 그리스 정부도 ‘금연 아니면 흡연’이라는 이분법적 금연 정책에서 ‘상대적인 안전’을 취하는 위해 감축(harm reduction)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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