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법무 ‘한명숙 사건’ 수사지휘]검사의 위증 지시 의혹 시효 5일앞
박범계 “기소여부 다시 심의하라”… 헌정 첫 종결사건 수사지휘권 발동
부장회의 멤버들 현정권 우호적 성향
현직검사 “朴, 논란피하려 결정 넘겨”… 정가 “여권, 韓 前총리에 마음의 빚”
“법무부 장관의 구체적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는 검찰 수사의 자율성과 중립성을 고려할 때 가급적 자제돼야 한다. 이미 종결된 사건의 경우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더욱 그러할 것이다.”
17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대검찰청 부장(검사장급)회의에서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모해(謀害)위증 의혹 사건의 기소 여부를 다시 심의하라’며 대검에 보낸 수사지휘서에는 이 같은 문장이 적혀 있다. 이는 법무부가 한 전 총리 재판 과정에서 한 전 총리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재소자와 이를 지시했다는 전·현직 검사들에 대해 대검이 5일 불기소 처분을 내린 지 12일 만에 처분 결과를 뒤집기 위한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는 부담감이 노출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종결된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 발동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 기소 지시 대신 “대검 부장회의가 판단”
박 장관은 검찰총장 직무대행인 조남관 대검 차장검사에게 이날 발송한 A4 용지 4장 분량의 수사지휘서에서 대검 부장회의를 통해 한 전 총리 사건의 혐의 유무 및 기소 여부를 다시 판단하도록 했다.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과 허정수 대검 감찰3과장,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으로부터 사안을 설명받고, 의견을 충분히 들으라고도 했다. 한 부장과 임 연구관은 전·현직 검사들의 기소를 주장해 왔고, 주임검사인 허 과장은 불기소 처분에 동의했다.
형식상으로는 대검 부장회의에 일임하는 모양새이지만 검찰 안팎에선 대검 부장검사 중 적지 않은 수가 현 정권에 우호적인 성향이라 박 장관이 사실상 수사 검사의 기소를 지시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대검 예규인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한 협의체 등 운영에 관한 지침’에 따라 대검 부장회의는 재적 과반수 참석으로 열리고, 만장일치되는 의견이 없을 경우 다수결로 결정한다.
모해위증 의혹 사건의 공소시효 만료일인 22일 전에 열리게 되는 대검 부장회의는 수사지휘에 따라 총 7명의 검사장이 참여한다. 이종근 형사부장과 이정현 공공수사부장, 한 부장은 현 정부에 친화적인 성향으로 알려져 있어 기소 의견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성식 반부패강력부장과 고경순 공판송무부장도 기소 의견을 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재경지검 부장검사는 “박 장관 본인은 기소를 적시해 수사지휘 했을 때 발생하는 직권남용 혐의 소지를 피하고 대검 부장들한테 미룬 것”이라고 분석했다.
법무부가 ‘포괄일죄’를 수사지휘서에서 언급한 점도 박 장관의 기소 의지를 드러내는 한편 향후 법원의 판결까지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포괄일죄란 서로 다른 시점에 벌어진 여러 개의 행위가 포괄적으로 1개의 구성요건에 해당해 동일한 범죄를 구성하는 경우를 말한다. 검찰 측 증인인 재소자 김모 씨에게 2011년 3월 23일 허위 증언을 하게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한 전 총리 사건 수사팀 검사는 같은 해 2월 21일에도 허위 증언을 강요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모해위증의 공소시효는 10년으로 2월 사건의 공소시효는 끝났지만 포괄일죄가 적용될 경우 2월 사건에 대한 추가 기소도 가능해진다. 박 장관은 퇴근길에 “법무부의 모든 실국 본부와 간부 회의를 다 열었고 특별한 이견이 없었다”며 “대검에서 집단지성을 발휘해 다시 한 번 판단해 달라는 의미”라고 했다.
○ “한 전 총리에 마음의 빚” 여권 정서 반영된 듯
종결된 사건에 수사지휘권이 발동되는 ‘초강수’가 동원된 것은 여권에서 한 전 총리가 가지는 정치적 입지 때문이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더불어민주당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전 총리에게 일종의 ‘마음의 빚’이 있다”고 했다. 한 전 총리는 민주당이 야당이던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고, 당 대표를 지내는 등 ‘폐족’이라고 불렸던 친노(친노무현) 진영의 재건을 이끌었다. 박 장관도 2015년 한 전 총리에 대한 유죄가 확정된 직후 “대법원이 권력에 굴종한 자기모순적 판결을 내놓은 것” “이명박 정권 당시 검찰 수사는 보복 수사적 성격이 컸다”고 했다.
한 친문(친문재인) 인사는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사면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기준이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도 이 기준 때문에 한 전 총리를 사면하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 전 총리는 추징금 9억 원 중 약 2억 원만 납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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