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피해자 “서울시장 보선 치러지게 된 이유 묻혀버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박원순 피해자 회견]‘성추행 사건’ 이후 첫 공식 회견

17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 A 씨 측 법률대리인단인 
서혜진 변호사(오른쪽)가 발언하고 있다. 다른 참석자들의 발언이 끝난 뒤 모습을 드러낸 A 씨는 “그분(박 전 시장)의 위력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저를 괴롭게 하고 있다”며 2차 가해를 멈춰 달라고 호소했다. 사진공동취재단
17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 A 씨 측 법률대리인단인 서혜진 변호사(오른쪽)가 발언하고 있다. 다른 참석자들의 발언이 끝난 뒤 모습을 드러낸 A 씨는 “그분(박 전 시장)의 위력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저를 괴롭게 하고 있다”며 2차 가해를 멈춰 달라고 호소했다. 사진공동취재단
17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 마련된 기자회견장. 촬영을 마친 카메라 기자들이 철수하자 회견장 한쪽의 가림막 뒤에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 A 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A 씨는 가지고 온 태블릿PC를 열어 직접 작성한 입장문을 떨리는 목소리로 읽어 나갔다. 그는 집요하게 이어졌던 2차 피해 경험 등을 설명하면서 잠시 울먹이기도 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의 사과와 후속 조치를 요구할 때는 정면을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 “자신들만 정의라는 사람들이 괴롭혀”

A 씨는 “그분(박 전 시장)의 위력은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저를 괴롭게 하고 있다. 자신들만 정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무자비하게 괴롭힐 때 그분의 위력이 그들의 이념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며 2차 피해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했다.

‘2차 가해’를 멈춰 달라는 A 씨의 호소는 계속 이어졌다. “저는 제 신상이 유출될 염려가 전혀 없었는데도 지지자들의 잔인한 2차 가해 속에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일을 했던 사람들이 2차 가해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A 씨는 “고인이 살아서 사법 절차를 밟았다면 조금 더 사건의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었을 것”이라며 “방어권을 포기한 것은 상대방이다. 고인의 방어권 포기에 따른 피해는 온전히 저의 몫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해 사실을 인정받지 못하는 한계를 악용해 저를 비난하는 공격들이 있다. 상실과 고통에는 공감하지만 그 화살을 제게 돌리는 행위는 이제 멈춰주시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담담하게 입장문을 읽던 A 씨는 “고인을 추모하는 거대한 움직임 속에서 제가 설 자리가 없다고 느껴졌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울음을 참지 못해 흐느끼기도 했다.

○ “이제는 용서할 수 있게 진정한 사과 해달라”

A 씨는 “저의 회복을 위해 용서하고 싶다. 지금까지 상처 줬던 일에 대해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길 바란다”며 민주당의 책임 있는 대처를 요구했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대해 언급할 때는 조심스러운 듯 멈칫하며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이번 선거가 처음부터 잘못됐다는 생각을 한다”며 “민주당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흔들었다”고 했다.

A 씨는 “제 피해 사실을 왜곡하고 오히려 저를 상처 줬던 정당에서 시장이 선출됐을 때 저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든다. 지금 선거캠프에는 저에게 상처 줬던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를 향해선 “저를 피해호소인이라고 명명했던 의원들에 대해서 직접 저에게 사과하도록 박 후보가 따끔하게 혼내주셨으면 좋겠다”며 조치를 요구했다. 자신을 피해호소인으로 지칭했던 남인순 진선미 고민정 의원 등이 박 후보의 선거캠프에 합류한 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A 씨는 특히 여성단체로부터 박 전 시장의 피소 사실을 듣고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보에게 알린 것으로 드러난 민주당 남인순 의원을 질타했다. A 씨는 “제가 1월에 남인순 의원의 사퇴를 요구했지만 민주당에서는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그분으로 인한 저의 상처와 사회적 손실은 회복하기 불가능할 지경이다. 반드시 정치적인 책임을 지셔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A 씨는 기자회견이 끝나자 신분 노출을 우려한 공동행동 관계자들이 회견장 외부 상황을 확인한 뒤 김재련 변호사와 함께 회견장을 먼저 빠져나갔다. 김 변호사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피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억측이 많아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문을 받아본 후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는 자리를 마련하기로 예전부터 계획해왔다”며 “선거 시기에 맞춘 기자회견이라는 추측이 있는 걸 알지만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박원순 피해자#서울시장 보선#공식 회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