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라제네카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사망한 사람 가운데 혈전(피가 응고된 덩어리)이 발견된 사례가 국내에서 처음 확인됐다. 정부는 “사망 원인은 백신 접종 때문이 아니다”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정밀 부검 결과에 대해 재평가할 계획이지만, 일단 백신 탓에 혈전이 발생했을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혈전 생성의 원인은 정밀 부검을 하더라도 규명하기 어렵다”며 “현 상태에서 백신 탓이 아니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 “백신 접종, 사망 원인 아니다”
17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혈전이 발견된 60대 여성 환자에 대한 부검은 8일 이뤄졌다. 김중곤 예방접종피해조사반장은 “처음 의료진 사인 판단은 흡인성 폐렴이었고 추가 조사 결과 급성 심근경색에 해당하는 소견도 있었다”며 “두 사인만으로 사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부검 과정에서 혈관 내부의 혈전 발생이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실은 12일 열린 예방접종피해조사반 회의를 통해 보건당국에 신고됐다. 이날 관련 내용을 발표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독극물 중독 여부 등에 대한 추가 분석을 위해 미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 반장은 “혈전은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아도 자주 접하게 되는 현상”이라며 “10만 명당 100명 이상 발생하고 나이가 들수록 발생 빈도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보건당국은 정밀 부검 결과를 보고 최종 판단을 한다는 입장이지만 일부 전문가는 “혈전이 사망 원인인지 아닌지만 알 수 있을 뿐 혈전 자체가 무엇 때문에 생겼는지 확실하게 알아내긴 어렵다”는 의견이다.
○ 뒤늦은 공개에 ‘백신 불신’ 자초
보건당국이 사망 11일 후, 혈전 발생 사실을 파악하고도 5일 후 관련 내용을 공개한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질병청은 16일까지도 “혈전과 관련성이 확인된 백신 접종 사례가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정세균 국무총리는 7일 백신 사망과 관련해 “단 하나의 사례도 가벼이 넘기지 않고, 조사 결과가 나오면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보건당국은 전문가 심의와 공식 부검 결과 확인을 위해 발표를 미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조치가 백신 불신을 키울 수 있다고 경고한다. 조현 인제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국민들의 의식 수준을 믿고 정보를 공개해야지, 만약 조금이라도 감추는 느낌이 들면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혈전 관련 이상반응 외에 다른 문제에서도 ‘소통 부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백신 접종자들이 면역 반응으로 인해 응급실에 갈 정도로 몸살과 호흡곤란을 겪어도 방역당국이 ‘경증’으로 분류하는 게 대표적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확보한 백신 대부분이 아스트라제네카뿐이어서 위험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 아니냐”며 “정부가 국민의 고통과 불안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그만큼 국민과 방역당국 사이에 시각차가 있다는 얘기다.
○ 유럽 접종 재개해도 불안감 극복 과제
전 세계적으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부작용 논란이 커지면서 18일(현지 시간) 유럽의약품청(EMA)의 결정에 관심이 쏠린다. 현재 최소 23개국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일시 중단한 상태지만, EMA 조사 결과에 따라 재개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유럽에선 이미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신뢰도에 상처가 생긴 만큼 접종이 재개돼도 속도가 빠르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6일(현지 시간) 프랑스 여론조사회사 엘라브가 자국민 10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58%나 됐다. 신뢰한다는 응답은 20%로 화이자 백신(52%)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프랑스 툴루즈대의 장루이 몽타스트뤼크 임상약리학 학장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한 번 중단됐다가 다시 승인된 의약품이 전면적으로 사용된 사례는 거의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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