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의 모해위증 의혹에 대해 대검 부장회의가 재심의하라는 수사지휘를 하면서 재심을 통한 한 전 총리의 ‘명예회복’이 가능한지 관심이 쏠린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날 박 장관은 대검 부장회의를 열어 한 전 총리 재판에서 검찰 수사팀의 요구로 허위 증언을 했다는 의혹의 당사자인 재소자 김모씨의 혐의 유무와 기소 가능성을 다시 판단하라 지시했다.
대검에서 무혐의 결론을 내린 김씨의 모해위증 혐의를 다시 판단하라는 취지인데, 만일 김씨가 실제로 기소된다면 김씨에 허위증언을 시킨 검찰 관계자들에 ‘모해위증 교사’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이 경우 형사소송법에서 규정하는 재심 사유 중 ‘공소의 제기 또는 그 공소의 기초가 된 수사에 관여한 검사가 그 직무에 관한 죄를 지은 것이 확정판결로 증명될 때’에 해당되므로, 이론상 재심 청구가 가능하다.
즉 당시 검찰 관계자들의 수사 과정상 위법 행위가 드러나 재판을 통해 죄가 확정되면 재심 청구를 할 수 있고, 한 전 총리가 무죄를 받을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재심 청구까지만 가도 성공”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 전 총리의 재심 및 재심을 통한 무죄 가능성을 낮게 본다. 김씨와 수사팀 관계자들의 죄가 확정된 후 재심을 청구해 한 전 총리의 무죄를 받아내기까지 넘어야할 산이 워낙 많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우선 대검 내에서 김씨에 대한 무혐의 판단에 이견이 거의 없는 상태다. 위증교사 의혹을 제기했던 재소자 한모씨 진술의 신빙성을 두고 대검 내 평가가 다른데, 한씨의 진술을 인정하는 건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과 임은정 대검 검찰연구관 등 소수라 한다.
검찰 내부에서도 박 장관 스스로 확신이 있었다면 직접 ‘기소하라’는 지시를 내렸을텐데 위험 부담이 크니 대검 부장들에 떠넘겼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박 장관이 말했던 대검의 ‘집단지성’을 발휘해 내렸던 결론을 굳이 다시 보라는 건 결국 ‘책임 회피’란 취지다.
설사 김씨와 수사팀 관계자들까지 재판에 넘겨 최종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한 전 총리가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 역시 매우 낮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한 전 총리는 2007년 3~8월 건설업자 고(故) 한만호씨로부터 3차례에 걸쳐 총 9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2010년 7월 기소돼 2015년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9억원 중 3억원에 대해 대법관 13명 만장일치로 유죄 판단을 내렸고, 나머지 6억원에 대해서도 8명이 유죄 의견을 냈다. 유죄가 인정된 결정적 근거는 한만호씨의 비망록이나 재소자들의 증언이 아닌 한씨가 한 전 총리에 전달한 수표 등 ‘물증’이었다.
이에 법조계에선 박 장관이 수사지휘를 통해 얻고자하는 궁극적 목표는 재심 청구가 아닌 ‘정치적 판 흔들기’로 봐야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정치인들은 ‘한 전 총리 무죄’라는 결과를 바라는 게 아니다. 판을 흔들어 ‘검찰의 무리한 수사’라는 사실만 입증되면 된다”며 “한 전 총리를 구하려기 보다 자신과 자기 진영의 정치적 입장을 견고히 한다는 의미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변호사도 “전직 검찰총장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상황에서 검찰 수사 과정에서 문제가 있으니, 이러한 검찰의 수장이었던 사람은 결코 깨끗하지 않다는걸 보여주려는 것”이라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박 장관이 수사지휘권 발동과 함께 지시한 법무부와 대검의 합동 감찰을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수사팀의 유죄를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당시 위법하고 부당한 수사관행을 문제 삼아서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시각이다.
류혁 법무부 감찰관은 “감찰관실이 기록을 면밀히 검토하는 과정에서 인권침해와 불필요한 사건관계인 조사 등을 확인했다”며 “이같은 수사관행은 검찰 수사 전반에 대한 국민 신뢰를 실추시킨다”고 합동 감찰 배경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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