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11일 오전 7시께 대전 서구의 한 모텔에서 혼자 눈을 뜬 A씨(22·여)는 잠시 혼란에 빠졌다. 전날 지인들과 술을 마신 것까지는 기억이 났지만, 너무 취했던 탓에 그 이후의 일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직 술기운이 다 가시지 않은 탓일까. 이때까지만 해도 A씨는 자신이 만취해 혼자 모텔을 찾았을 것이라 생각하곤 서둘러 집으로 향했고, 도착해 다시 몇 시간 더 잠을 청한 뒤에야 이상함을 느꼈다.
곰곰이 지난밤을 되짚어 보던 A씨는 결국 지인에게 연락해 당시 상황을 물어봤다. A씨의 지인은 만취한 A씨를 택시에 태운 뒤, 택시 기사에게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까지 건넸다고 했다.
그러나 A씨가 확인한 카드 결제 내역에는 택시비도, 모텔비도 없었다. 성폭행 피해를 직감한 A씨는 자신이 탔던 택시를 추적하는 한편, 눈을 떴던 모텔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모텔 주인은 지난 새벽 어떤 남성이 들어오긴 했지만 상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A씨는 CCTV 영상을 확인해달라고 부탁했고, 자신이 한 남성의 부축을 받고 들어오는 장면이 찍혔다는 말에 경찰서로 향했다.
A씨는 영상을 직접 확인하지 못했지만, 화면 속 남성은 지난밤 A씨를 태웠던 택시기사 B씨(66)였다.
곧바로 경찰에 붙잡힌 B씨는 수사 과정에서 A씨가 먼저 성관계를 제안했다는 믿기 어려운 주장을 계속했다. A씨의 속옷 등에서 피임도구 없이 성관계를 가졌다는 증거가 이미 확보된 탓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변명은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B씨는 택시에 탄 A씨가 자신의 목을 감싸고 허벅지를 쓰다듬었고, 모텔로 함께 가자고 유혹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당시 A씨는 명확한 의사소통이 가능할 만큼 술에 취하지 않았었고, 모텔에도 서로 팔짱을 끼고 멀쩡히 걸어 들어갔다고 말했다.
경찰이 똑바로 서있지도 못하는 A씨의 모습이 담긴 CCTV 화면을 보여줬을 때는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준강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고도 이 같은 주장을 고수한 B씨에게 1심 재판부는 결국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1심을 맡은 대전지법 제12형사부는 “B씨는 자신 명의의 카드로 숙박비를 결제하고 번화가 모텔을 이용했다는 점 등에서 준강간의 고의가 없다고 주장하나, 충동적으로 치밀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밖에 여러 정황 및 증거로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혐의가 인정됨에도 납득할 수 없는 변명으로 피해자의 인격과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A씨가 당시 지인들과 나눴던 대화와 이후 취한 행동, B씨에게 합의를 제안하지 않고 엄벌을 탄원하는 점 등에서 아무 이유 없이 무고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B씨는 판결에 불복해 즉각 항소하면서 1심과 동일한 주장을 펼쳤지만, 항소심에서도 B씨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전고법 제3형사부는 지난 2월 5일 B씨의 항소를 기각하면서 “B씨가 주장하는 내용들을 아무리 참작하더라도, 원심의 형량이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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