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터” 정주영 회장 자랑하던 청운동 자택, 20년 만에 첫 공개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1일 21시 11분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우리 집은 청운동 인왕산 아래에 있는데 산골 물 흐르는 소리와 산기슭을 훑으며 오르내리는 바람 소리가 좋은 터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38년 동안 살았던 서울 종로구 청운동 자택을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자랑했다고 한다. 그룹을 이끄는 중에 잠시나마 여유를 주는 집에 대한 애정이 컸다.

현대차그룹 제공
현대차그룹 제공


21일 현대자동차그룹은 정 명예회장 20주기를 맞이해 제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포함해 청운동 자택 내부와 외부 사진을 공개했다. 청운동 자택 사진은 20년 간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사진 뉴시스
사진 뉴시스


정 명예회장의 삶이 곳곳에 묻어 있는 청운동 자택은 1962년 7월 건물면적 약 317㎡(96평)으로 지어진 2층짜리 집이다. 그룹 창업주의 집이었지만 화려하지 않고 수수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으리으리하지 않고 평온하면서 잔잔한 느낌을 주는 집이다. 나무와 숲, 바위로 둘러싸여 있어서 계절 별 아름다움도 만끽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거실과 응접실로 사용되는 1층엔 오래돼 보이는 피아노와 회색 소파, 책장 등이 놓여 있었다. 거실 벽 한 쪽엔 정 명예회장과 부인 변중석 여사의 영정이 나란히 걸려 있었고, 소박하게 차려진 제사상 뒤쪽으로는 정 명예회장의 어머니인 한성실 여사의 영정도 놓여 있었다.

정 명예회장 영정 위엔 구상 시인이 영전에 바친 ‘겨레의 뭇 가슴에 그 웅지 그 경륜’ 이란 제목의 추도사가 걸려 있었다. 추도문에는 “촌부자(村夫子) 모습에다 시문을 즐기시어 나 같은 서생과도 한평생 우애지녀”라는 글귀가 써있다. 초등학교 밖에 못 나온 기업가였지만 시인과 수필가 등 문인들과 자주 어울렸고 문학적 재능도 뛰어났던 고인을 기린 것이다 이밖에도 정 명예회장이 좋아했던 시 ‘청산은 나를 보고’와 수묵화, 서예 작품 등이 집안 벽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사진 뉴시스
사진 뉴시스


자택 마당에서 바라본 바위에는 ‘인왕산의 양지쪽으로 볕이 잘 들고, 신선이 살 만큼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라는 의미의 ‘양산동천(陽山洞天)’과 남거 장호진(조선시대 남양군수·1856~1929)이 유거하는 집이라는 뜻의 ‘남거유거(南渠幽居)’가 새겨져 있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을 이끌면서 말 못할 고뇌와 못 다 이룬 꿈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을 텐데, 집안 곳곳에 놓인 글귀 등에서 그의 마음이 읽혀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 명예회장은 생전에 매일 오전 5시면 자식들을 청운동 집으로 불렀다. 아무리 바빠도 아침을 함께 먹는다는 원칙 때문이었다. 정 창업주는 “나는 젊었을 적부터 새벽 일찍 일어난다. 그날 할 일이 즐거워서 기대와 흥분으로 마음이 설레기 때문”이라며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현재 청운동 자택은 2000년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을 거처 2019년 손자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물려받았다. 현대가는 이 곳에서 정 창업주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 부인 변중석 여사의 기일은 8월 17일이지만 지난해부터는 제사를 합쳐서 지내고 있다.

20일 있었던 정 명예회장 20주기 제사에는 아들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 정몽일 현대기업금융 대표이사, 며느리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조카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정 창업주의 장손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이 참석했다. 정몽구 회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