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세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 최모 씨(43)는 며칠 전 여섯 살 딸이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19세 이상 시청가’로 방송된 한 TV 드라마 속 내용이었다. 집에선 해당 드라마를 시청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는 초등학생 오빠들과 유튜브에 있는 드라마 편집본을 봤다.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쥐어 준 게 화근이 된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아이들의 TV와 컴퓨터, 스마트폰 이용시간이 늘었다. 이 과정에서 성인 대상의 영상물을 거리낌 없이 보는 아이들 탓에 부모들의 걱정이 많다. 실제 지난해 초등학생 10명 중 3명 이상이 성인용 영상물을 본 것으로 조사됐다.
23일 여성가족부가 전국 청소년 1만453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청소년 매체이용 및 유해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초등학생 가운데 “성인용 영상물을 이용한다”는 응답 비율이 33.8%에 달했다. 2016년 18.6%, 2018년 19.6%였다가 지난해 큰 폭으로 늘었다. 성인용 영상물은 19세 이상 시청가, 청소년 관람불가 등으로 표시된 TV 프로그램과 영화 등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부모들이 자녀의 모바일 기기 사용을 통제하기 어려워지며 청소년들이 유해 영상에 노출되기 쉬웠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인터넷 개인방송과 동영상 사이트를 매일 들어간다는 학생은 77.2%로 2018년에 비해 9.2%포인트 늘었다.
학생들이 스마트폰과 컴퓨터 등을 통해 접하는 콘텐츠의 수위도 문제다. 최근 시작된 한 TV 드라마는 ‘15세 이상 시청가’ 방송이지만 학교폭력, 살인 등 자극적인 내용을 방송해 논란이 됐다. 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늘어나면서 잔인한 장면이 들어간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가 이전보다 더 쉽게 어린이들에게 노출되고 있다. 맞벌이를 하는 박모 씨(42·경기 성남시 분당구)는 “아이가 칼로 사람을 베는 장면이 그대로 나오는 일본 만화를 보고 있었다”며 “키즈계정을 설정한 것도 별 도움이 안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초등 5학년 자녀를 키우는 배모 씨(42)는 “아이가 유튜브 게임 방송을 보더니 ‘X좋아, XX싫어’ 같은 비속어를 사용한다”며 “스마트폰 자녀보호 기능을 쓰긴 하지만 노트북을 쓸 때는 무용지물”이라고 말했다. 아동 성교육 전문가인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무조건 아이를 통제하기보다는 텔레그램 등 모바일 앱의 위험성을 자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안전 수칙’을 정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들의 온라인 성폭력 피해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청소년 성폭력은 절반에 가까운 44.7%가 온라인에서 발생했다. 반면 학교 내 성폭력은 2016년 63.6%에서 지난해 32.5%로 크게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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