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존재의 시간’을 담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도 그 가치를 잊지 않고 변함없이 흐를 한강에서 나를 느끼며 사진으로 담아낼 생각입니다.”
최근 사진집 ‘서울, 한강을 걷다 2010-2020’(한스그래픽)을 출간한 이현권 씨는 지난 10년간의 한강을 소재로 한 사진 작업이 ‘존재로서의 시간’을 느낀 순간이었다고 밝혔다. 사진작가이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이 씨가 한강에 ‘빠져든’ 이유는 뭘까.
“정신과 전공의 시절 2년 넘게 찍어온 정신과 건물과 환자들의 필름 절반을 잃어버린 뒤 자연스레 한강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랬는지 궁금합니다. 그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이 10년간 한강을 찍은 이유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한강은 역사적 내러티브가 층층이 담긴 곳이자 많은 사람들의 삶과 연관된 공간입니다. 아마도 저는 특별함이 사라진 일상의 공간에 새로움을 부여하고 싶었나 봅니다.”
사진집에는 이 작가의 감각과 감정을 담고 있는 초기, 한강을 기하학적으로 재해석한 중기, 시각언어에 대한 실험을 하는 현재까지 세 시기로 구분한 작품 104점이 실려 있다.
무의식을 다루는 정신과 의사와 사진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걸까.
“한강은 많은 이에게 기억의 공간이면서 역사적으로는 상처와 우울이 공존합니다. 역사학자 임기환 선생은 제 사진을 보고 ‘기억의 배반’이라고 했습니다. 차가운 건물들이 가득 차 있는 풍경이 배제되지 않으면서도 새롭게 정서적으로 재배치돼 있다는 의미지요. 이런 지점에서 무의식을 다루는 직업의 습성이 나온 듯합니다.”
한강을 찍으면서 잊을 수 없는 경험이나 기억이 있느냐는 물음에 “아마도 그 순간은 사진에 담겨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똑 부러진’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책에 수록된 사진은 그 느낌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이 사진집은 언젠가 떼어낼 액세서리입니다. 제가 이 사진집에 묶여있다면 새로운 시간을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있어 과감히 과거에서 나와 새롭게 한강에 마주설 수 있습니다.” 이 작가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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