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크대 MBA 퇴학 사건과 부산대 의전원의 경우[최영해의 폴리코노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4일 14시 39분


미국 대학생이 가짜 표창장과 논문을 냈다면?
MBA 학생들 과제물 베끼다가 9명 퇴학 조치
표절 등 ‘아너 코드’ 지키지 않으면 심각한 사안으로 봐
부산대 이제야 조사계획 수립, 신뢰 기회 놓쳤다

2007년 4월 미국 남부의 명문 대학인 듀크대 경영대학원 푸쿠아 비즈니스스쿨에서 난리가 났다. MBA 코스를 밟고 있던 학생들이 과제물을 서로 베꼈다는 소문이 학교에 퍼졌다. 한 교수가 학생들에게 내준 과제의 답안이 서로 유사한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듀크대는 한 달 동안 진상 조사를 벌여 34명을 징계했다. 학교는 징계위원회를 열고 퇴학 9명, 1년 정학 및 낙제 15명, 나머지는 낙제 처분을 내렸다. 퇴학 조치를 받은 9명은 모두 아시아계 유학생들이었다. 퇴학 통보를 받은 9명은 학교 조치가 너무 가혹하다며 항고했다. 징계위에 불려온 학생들의 대처가 흥미로웠다. 한국 학생 3명은 “학교의 아너 코드(Honor Cord·명예규약)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며 잘못을 솔직히 인정했지만, 중국 학생 6명은 끝까지 리포트를 베껴 내지 않았다며 잡아뗐다.

듀크대 경영대학원인 푸쿠아 비즈니스 스쿨은 2007년 5월 MBA 학생들의 과제물 부정행위를 적발해 대대적인 징계 조치를 내렸다. 출처 듀크대 홈페이지
듀크대 경영대학원인 푸쿠아 비즈니스 스쿨은 2007년 5월 MBA 학생들의 과제물 부정행위를 적발해 대대적인 징계 조치를 내렸다. 출처 듀크대 홈페이지


● 듀크대 MBA 학생 9명 퇴학 조치
학교는 끝까지 부인한 6명에게는 원래 징계 수위인 퇴학 조치를, 잘못을 인정한 3명에게는 1년 정학 조치로 감경했다. 듀크대 사건은 남의 글을 베끼는 것이 중대한 범죄가 될 뿐 아니라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더더욱 용서하지 않는, 연구윤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중대한 사례로 꼽힌다. 시험에서 부정을 저지르지 않고 연구에서 남의 글을 베끼지 않겠다는 명예규약인 아너 코드(Honor Code)는 미국의 대학 뿐 아니라 초등학교에까지도 적용되는 무서운 ‘불문율’과 같은 것이다. 당시 미국 언론에서도 ‘듀크대 사태’가 크게 보도되면서 화제가 됐다.

당시 듀크대 이웃 학교인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연수를 하고 있던 기자는 이 사건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듀크대 MBA 과정에 등록한 한국 유학생도 몇 사람 알고 있는 터였다. 기자와 한 주일에 한 번 만나 미국 현안들에 대해 토론하던 노스캐롤라이나대 아카데믹 어드바이저인 케슬러 씨와 이 문제를 놓고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듀크대의 조치가 너무 심한 게 아니냐”고 물었다. 그 또한 듀크대 사태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면서 과거 자신이 역사 교사로 있었던 고교 때의 사건을 얘기해 줬다. 고교 교사 시절 과제로 낸 두 학생의 페이퍼가 유사한 것을 발견한 케슬러 씨는 두 학생을 불러 추궁했다고 한다. 과제를 작성하면서 서로 보여주거나 협업해선 안 된다는 조건을 분명히 했는데, 어떻게 두 보고서가 비슷한지를 캐물었다. 두 학생은 자신이 직접 작성했다며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미국 대학에서 학생들이 ‘아너 코드’를 위반할 경우 학교에서 쫓겨날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출처 듀크대 홈페이지
미국 대학에서 학생들이 ‘아너 코드’를 위반할 경우 학교에서 쫓겨날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출처 듀크대 홈페이지


● 美 고교에서도 부정행위는 엄벌
Frank Kessler (사진 출처 노스캐롤라이나대 홈페이지)
Frank Kessler (사진 출처 노스캐롤라이나대 홈페이지)
케슬러 씨는 고백하는 것이 양심을 지키는 길이라며 솔직하게 얘기하라고 권고했다. 추궁 끝에 한 학생은 리포트를 쓰면서 서로 협조했다고 실토했지만 다른 학생은 끝까지 그런 적이 없다고 잡아뗐다. 그는 이 사실을 학교에 보고했고, 학교는 마지막까지 부인한 학생을 퇴학 조치했다. 표절을 시인한 학생은 경고에 그쳤다. 학교에서 학생을 내쫓는 퇴학은 학생에게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다. 한 과목 중간고사에 불과한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가혹하리만큼 지나칠 정도인 학교의 처사는 자신의 생각이 아닌 것을 베끼는 학생을 ‘지식 도둑’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라고 케슬러 씨는 얘기했다.

또 다른 사례를 보자. 미국 버지니아 주의 한 공립고교에 다니던 1학년 학생이 컴퓨터프로그래밍 수업을 들으면서 과제물 답안을 친구에게 보여줬다.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던 친구는 그대로 베끼지는 않겠다는 당초 약속을 깨고 친구 과제물을 복사해 제출했다. 이들은 학교의 표절체크 시스템에 걸려들었다. 교사는 두 학생을 불러 경위를 조사했다. 두 학생 모두 경고 조치를 받았고,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질 때는 퇴학당할 수 있다는 경고를 받았다. 두 학생이 낸 과제물의 성적은 보여준 사람과 베낀 사람 차별 없이 모두 0점 처리됐다. 부정행위를 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 역시 범죄라는 것이다.

● 입시 제출서류는 진실이라는 가정 아래 선발
지난해 한국 사회를 들끓게 만들었던 ‘조국 사태’는 입시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에서 불거졌다. 본인이 별로 기여한 게 없는 학술지 등재 논문에 제1저자로 이름을 올렸고, 아버지의 인맥을 활용한 거짓 인턴 증명서에다 총장도 모르는 총장상을 만들어내 입시에 활용한 것이 많은 이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입학지원서에 하나의 스펙을 올리기 위해, 자기소개서에 한 줄을 제대로 쓰기 위해 무한 경쟁을 벌이는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입시에서는 학교성적 뿐 아니라 이런 모든 과외 활동과 수상 경력이 당락을 좌우하는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부산대는 입시 부정과 관련해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진상 조사를 벌이지 않고 손을 놓고 있었다.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난 뒤에도 대법원의 판결까지 기다린다고 했다가 최근에서도 조사 계획을 교육부에 보고했다.  동아일보DB
부산대는 입시 부정과 관련해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진상 조사를 벌이지 않고 손을 놓고 있었다.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난 뒤에도 대법원의 판결까지 기다린다고 했다가 최근에서도 조사 계획을 교육부에 보고했다. 동아일보DB

미국 대학이든 한국 대학이든 학교 측은 모든 서류가 진실이라는 가정 아래 한 아이의 성장 과정을 파악하고 당락을 결정한다. 이 때문에 입시는 어떤 분야보다도 공정해야 한다는 것은 모든 참여자들이 합의한 경쟁의 기본이다. 아무리 입시 경쟁이 치열하다고 해도 가짜 서류를 만들거나 허위로 기재하는 것은 보통 부모들로선 엄두도 못내는 일이다. 더욱이 학생의 부모는 미국 대학과 영국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 누구보다도 연구 윤리를 준수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회의 지도층이다. 법의 경계선을 넘어선 이런 학문적 일탈을 엄격하게 처벌하지 않으면 인생 최대의 관문인 입시의 공정성이 저해될 뿐 아니라 룰을 지킨 선량한 다른 학생의 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지난해 연말 판결에서 1심 재판부는 “대학 입시부터 의전원 입시까지 이어진 범행 동기나 목적 등에 비춰 범행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며 “공정한 기회를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허탈감과 실망감을 안기고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게 하는 부정한 결과를 초래해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정경심 피고인에게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 부산대 의전원 늑장 대처가 불신 키워
부산대가 엊그제 의학전문대학원 부정 입학 의혹에 대한 조사계획을 교육부에 보고했다. 입학 취소 여부의 결정이 아니라 입학과 관련한 사실 관계를 조사할 계획을 보고했다니 이제 조사의 시작 단계다. 검찰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자녀의 입시 비리를 파헤쳐 기소한지 1년이 훨씬 넘었다. 그동안 손놓고 있던 부산대가 이제야 진상 조사를 벌이고 관련 위원회를 꾸리겠다고 보고했다니 때늦은 감이 있다.

지난해 검찰이 수사하고 있을 때 부산대는 수사 중 사안이어서 대학 차원에서 조사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부산대 총장은 검찰이 기소하면 그 때 보자고 했다가, 또 어물쩍 넘어갔다. 이어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하자 이번엔 법원의 최종 판결을 본 뒤에 결정할 문제라고 했다가 교육부 지시를 받고 부랴부랴 조사 계획을 내놨다. 그동안 사회적인 논란이 된 입시 비리 사건에서 대법원의 결정까지 보고 학교가 조치를 내린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지 궁금하다. 부산대가 미적대는 사이 학생은 의사 시험에 합격해 병원 인턴을 하고 있다. 대학으로선 졸업생에 대한 징계 조치를 논의해야 할 판이다. 학생의 입시 서류는 대학이 모두 갖고 있다. 검찰 수사나 법원 판결과 별도로 신속하게 조사를 벌였더라면 괜한 오해를 받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은 이제부터 입시 비리와 관련한 진상 조사를 시작하고 관련 위원회를 꾸리기로 했지만 시기적으로 타이밍을 놓쳤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출처 부산대 홈페이지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은 이제부터 입시 비리와 관련한 진상 조사를 시작하고 관련 위원회를 꾸리기로 했지만 시기적으로 타이밍을 놓쳤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출처 부산대 홈페이지


● 검찰 수사가 대학에 면죄부 주지 않아
사회적 논란이 되는 사안이라면 해당 대학에서 자체적으로 진상을 조사하는 것이 먼저다. 대학이 조사하기도 전에 검찰이 먼저 수사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다고 해도 이것이 대학의 조사 책무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현행 부산대 대학원 입시요강에 따르면 ‘입학지원서 및 구비서류의 기재사항이 사실과 다르거나 서류를 변조한 자, 대리시험 및 부정행위자는 불합격 처리하며, 입학 후 재학 중이더라도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한 사실이 발견될 경우 하위 과정(학사, 석사) 학위에 대한 조회 결과 인정되지 않는 학위로 확인(판단)될 경우 입학을 취소한다’고 돼 있다. 논란이 되는 시점인 2015년 입시요강에도 이와 유사한 규정이 있었다.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부산대, 그리고 감독당국인 교육부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고 교육계에서 그동안 쌓아왔던 사회적 자본이 무너질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 공립학교에선 초등학생 때부터 수학 문제 숙제에 맨 마지막에 사인하는 난이 있다. 부모가 도장을 찍거나 사인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본인이 서명을 해야 하는 자리다. 그 앞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나는 이 문제를 풀면서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았으며 오로지 내 자신이 풀었음을 맹세한다’ 누군가의 지식을 가로채선 안 된다는, 학문을 대하는 자세를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미국 대학에서 허위 논문과 가짜 표창장을 낸 학생이 입학 당국에 적발됐으면 어찌 됐을까.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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