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네에서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우철원(당시 13세), 조호연(12), 김영규(11), 박찬인(10), 김종식군(9)은 이날 밥을 먹고 도롱뇽 알을 찾겠다며 집 뒤쪽의 와룡산에 올랐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아이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끝내 집으로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임시공휴일에 사라진 아이들…여전히 장기 미제사건
이들이 실종된 날은 1991년 3월26일. 5·16 군사쿠데타 이후 중단됐던 지방자치제가 30년 만에 부활해 기초의원을 선출하는 날로 임시공휴일이었다.
경찰은 국내 단일 실종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인 연인원 35만명의 수색인력을 풀었지만 범인이나 실종 경위를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이 사건은 발생 11년이 지난 2002년 9월26일 실종 아동들이 와룡산 세방골에서 모두 유골로 발견되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다 2006년 3월25일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 현재까지 미제로 남아 있다.
국내 장기 미제사건 중 하나인 ‘대구개구리소년 실종·암매장 사건’ 이른바 ‘개구리소년사건’이 발생한 지 26일로 30년을 맞는다.
“철원아. 친구들과 잘 어울려 놀고, 배 곯지 말고 건강히 잘 지내거라. 벌써 30년이 흘렀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구나.”
철원군의 아버지 우종우씨(73)는 30년이 흘렀지만 그날을 선명히 기억했다.
우씨는 25일 뉴스1과의 통화에서 “그날은 임시공휴일이어서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었다”며 “철원이는 아침 8시쯤 밥을 먹고 ‘친구들과 놀고 오겠다’며 집을 나섰다”고 했다.
그는 “동네 골목길에서 친구들과 놀던 철원이가 다시 집으로 와 점퍼를 꺼내 입고 다시 나가길래 ‘어디 가느냐’고 물으니 ‘어른들 투표하는 것도 구경하고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고 하더라”며 “그길이 마지막이 됐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손이라도 한번 따뜻하게 잡아줬을 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우씨는 “벌써 30년이라니…거참”이라는 말을 연방하며 애써 덤덤함을 유지한 채 “혹시라도 범인이 살아있다면 이 말만은 꼭 하고 싶다. 이제 공소시효가 끝나 죄를 물으려고 해도 물을 수 없다. 다만 그 어린 아이들 5명을 왜 그렇게 이유 없이 죽였는지 그것만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씨는 “아이들이 누군가에게 살해된 뒤 유골이 발견된 세방골로 옮겨진 것 같다”며 “2019년 경찰이 재조사 방침을 세워 화성 연쇄살인 사건처럼 범인이 잡히길 기대했지만 관련 증거나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니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아이들이 실종된 이후 우씨 등 다섯 아이의 아버지들은 트럭을 몰고 전국을 다니며 ‘개구리소년 찾기에 동참해 달라’고 국민들에게 호소하는 전단지를 나눠주기도 했다.
평범하던 아이들의 가정은 이 사건으로 풍비박산이 났다.
실종 5년째인 1996년 한 유명대학 교수가 ‘종식이 아버지가 아이들을 죽여 집에 묻었다’고 주장하자, 경찰이 굴착기 등을 동원해 김종식군의 집 화장실과 부엌 바닥을 파는 소동을 벌였으나 아무 흔적도 나오지 않았다.
아들 실종의 범인으로 내몰린 종식군의 아버지 김철규씨는 화병을 얻어 2001년 10월 끝내 간암으로 숨졌다.
박찬인군의 집은 1992년 화재로 전소됐으며, 김영규군과 김호연군의 아버지도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구시·유족 26일 ‘개구리소년 추모 및 어린이안전 기원비’ 제막
한편 대구시는 유족 등과 함께 개구리소년사건 30주년을 맞아 오는 26일 오전 11시 성서 와룡산 인근에서 ‘개구리소년 추모 및 어린이안전 기원비’ 제막식을 가질 예정이다.
추모·기원비가 설치되는 것은 실종 30주년을 맞아 희생된 5명을 추모하고 고령의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다.
조형물은 가로 3.5m, 세로 1.3m, 높이 2m 규모로 화강석 등 자연친화적 재료로 만들어졌으며, 실종 아동들에 대한 추모와 그리움이 표현된 형상이다.
우씨는 “이제라도 놀다 지친 아이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 감사하다”며 “우리 아이들도 하늘나라에서 해맑게 웃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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