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 세 모녀 살인사건 피의자 김모씨(25)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와 범죄 예방 효과를 고려해 흉악범의 신상을 공개할 필요성은 있지만 그에 따른 ‘2차 피해’를 막는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신상공개의 법적 근거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처법) 제8조2항이다.
이 법은 수법이 잔인하거나 혐의가 중대한 피의자에 한해 범행 증거가 충분하고 국민의 알 권리 보장과 범죄 예방의 필요성이 인정될 경우 수사기관은 이름과 얼굴을 공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모든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게 아니라 살인을 비롯해 범죄 수법이 흉악한 피의자만 공개하는 것”이라며 “강제로 얼굴을 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 출두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언론에 노출되는 식으로 얼굴을 공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신상이 공개된 대표적인 범죄자는 텔레그램 비밀대화방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6)이다.
미성년자 등 여성 90여명을 협박해 성 착취 동영상을 찍게 한 뒤 이를 ‘박사방’에 유포한 조주빈은 지난해 성 범죄자로는 처음으로 신상이 공개됐다.
당시 경찰은 내부위원 3명과 외부위원 4명이 참여하는 신상정보 공개심의원회를 열어 “범죄가 중하고 인적·물적 증거도 확보됐다”며 신상공개를 결정했다.
이후 조주빈의 공범들은 물론 텔레그램 성 범죄의 시초로 꼽히는 ‘n번방’ 운영자 문형욱(26)의 신상이 잇달아 공개되면서 우리 사회가 디지털 성범죄를 살인 같은 흉악범죄로 인식하고 경각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찰은 ‘세 모녀 살해 혐의’로 구속 영장이 신청된 김씨의 신상도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씨는 범행 수개월 전부터 그가 스토킹한 것으로 보이는 여성 등 일가족 3명을 숨지게 한 혐의로 이날 오후 법원에서 구속 여부를 심사받을 예정이다.
‘김씨의 신상을 공개하라’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 글에는 현재 24만명 이상이 동의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법이 규정한 대로 증거가 충분하고 혐의가 중대한 피의자에 한해 신상공개를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2차 피해를 차단하는 방안을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지난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조주빈의 옛 여자친구 신상이 공개되자 비난성 글이 잇따랐고, 연쇄 살인범 강호순의 실명이 공개된 뒤 강호순 아들의 이름과 개인 정보가 포털사이트에 공유되기도 했다.
승재현 연구위원은 “피의자의 범행과 관련 없는 가족이 신상공개에 따른 피해를 볼 수 있다”며 “특히 자녀들에게 이뤄지는 2차 피해를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피의자 신상 공개가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힘든 만큼 신상 공개 대상자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신상공개는 피의자의 인권과 국민의 알 권리 사이에서 조화점을 찾아 결정해야 하는데, 이는 상당히 까다로운 과정”이라면서 “신상공개는 또다른 사회적인 형벌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연쇄 살인 등과 달리 행위가 극명하게 악하다고 판단되지 않는 한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게 옳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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