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01주년] 극과극-청년과 청년이 만나다
<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놓고 대립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신규 채용을 줄이는 나쁜 정책이다.” “아니다. 고용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2021년 창간기획 ‘극과 극―청년과 청년이 만나다’ 두 번째 주제는 청년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인 취업에서 선택했다. 갈수록 좁아지는 고용시장에 치여 청년들이 느끼는 압박감과 절망감은 비교 대상을 찾기 힘들 정도다.
특히 현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은 20, 30세대에게 공정성 시비로 번지며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2017년부터 이어진 찬반양론은 젊은 세대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여전히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두 번째 무대에 오른 청년 심규환 씨(24)와 나수빈 씨(23) 역시 정규직 전환을 놓고 팽팽하게 맞섰다. 금융 관련 공기업 입사를 꿈꾸는 심 씨와 노동 전문 변호사를 준비하는 나 씨는 동아일보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한규섭 교수팀이 개발한 ‘정치·사회 성향조사’에서도 보수와 진보로 엇갈렸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0명에게 들어본 취업에 대한 생각에서도 공정성은 가장 중요한 화두였다. 다만 정치·사회 성향 조사에서 나눠진 보수 성향의 청년 5명과 진보적인 청년 5명이 얘기하는 공정은 다소 차이를 보였다.
“노력 대신 정책으로 정규직 문턱 넘어… 불공정 처사에 허탈” “최소한의 고용안정 보장 못 받는다면 그거야말로 불공정”
“취준생(취업 준비생)에게 정규직 공채 문턱은 점점 높아지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부 정책 덕에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건 불공정하죠.”(심규환 씨·24)
“공채를 거치지 않았다고 최소한의 고용 안정도 보장받지 못하는 거야말로 불공정한 것 아닐까요.”(나수빈 씨·23)
규환과 수빈은 동아일보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한규섭 연구팀이 만든 ‘정치·사회 성향 조사’에서 보수에서 21번째, 진보에서 2번째로 나왔다. 해당 조사 결과 값은 가운데를 중도로 두고, 보수와 진보 각각 1∼50단계를 부여한다. 성향이 강할수록 숫자가 작아진다.
두 청년은 77이나 벌어진 성향 값만큼 직업과 노동을 바라보는 생각이 달랐다. 공기업 취업 준비생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지망생. 규환은 “일찍 퇴근해 아이들과 놀아주는 아빠가 되고파 안정적인 공기업을 원한다”고 말했다. 대학 새내기 때 학내 청소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한 학생모임을 만들었던 수빈은 “노동자 권리를 보호하는 변호사를 꿈꾼다”고 했다.
사전 인터뷰에서도 쓰는 ‘단어’부터 차이가 났다. 규환은 직업의 연관어로 ‘보상’(8회) ‘노력’(6회) ‘정당함’(3회)을 이용했다. 그에게 취업이란 “정당한 노력으로 성취할 보상”이었다. 반면 수빈은 취업과 함께 ‘권리’(8회) ‘요구’(4회) ‘연대’(3회)란 단어들을 썼다. “서로 연대하고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구의 한 북카페에서 일대일로 만났을 때도 이런 차이는 쉽사리 극복되지 않았다.
○ “정규직 전환으로 취업문 좁아져” vs “비정규직 비난해선 안 돼”
▽규환=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 이후 신규 채용이 30%나 줄었단 기사를 봤어요. 최근 한 공기업은 4명 뽑는 데 지원자가 2800명이 몰렸다고 해요.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취준생들은 허탈함을 느낍니다. 공기업 준비하는 학생들끼리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정규직 공채 준비하지 말 걸 그랬다” “진작 비정규직으로 아무데나 들어갈 걸 후회스럽다” 등의 얘기를 해요.
▽수빈=저도 학생이고, 주변 취준생 친구들 고충을 많이 들어요. 당연히 답답한 마음은 공감합니다. 그렇다고 비난의 화살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고 봐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신규 채용을 줄이지 않도록 정부와 기업에 함께 요구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규환=비정규직 노동자분들의 처우 개선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기업도 한정된 비용을 가지고 경영활동을 해야 하는 조직이잖아요.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면서 신규 채용까지 그대로 유지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얘기일까요. 특히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은 그로 인한 재정 악화가 발생하면 고스란히 국민에게 세금 부담으로 돌아올 텐데요.
▽수빈=기업의 본질이 비용을 줄이고 이윤을 내는 데 있다는 건 동의하죠. 하지만 결국 기업도 사람이 있어야 돌아가는 거잖아요. 왜 비용을 줄인다고 할 때마다 가장 먼저 인건비, 구조조정부터 고려해야 하느냐는 거예요.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처럼 약자들의 인건비부터 줄이려고 들잖아요. 고위직들이 가져가는 몫에 대해선 별로 언급하지 않는 거 같아요. 이건 문제가 있죠.
▽규환=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회사가 필요로 하는 능력을 갖추고 더 많은 보탬이 되는 사람, 더 많은 책임을 지는 이가 그만큼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건 자연스러운 거죠. 공기업 정규직 입사자들을 보면, 모두 각종 자격증에 영어 성적도 갖춰야 해요.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전공시험에 면접까지 보고 어렵사리 입사해요. 그에 비하면 비교적 어렵지 않게 입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똑같은 대우를 받는 게 과연 공정한 걸까요.
▽수빈=능력에 따라 처우가 다른 거는 당연히 그럴 수 있죠. 그런데 왜 그 차이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고용 형태의 차이로 구분돼야 하는 건가요. 아직 학생이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월급이 차이 나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쳐요. 하지만 고용 형태라는 ‘신분’ 때문에 당장 내일 잘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건 부당해요. 비정규직 역시 똑같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이들인 건 마찬가지인데 너무 비참하잖아요.
○ “일자리 넉넉했다면 우리가 이리 다퉜을까”
접점을 찾기 어려워 보였던 청년들의 대화는 시간이 흐르며 ‘공유 단어’는 확실히 늘고 있었다. 사전 인터뷰에서 수빈만 16차례 언급했던 ‘노동자’를 규환도 대화 과정에서 6번 입에 담았다. 반대로 규환이 사전 인터뷰에서 7번 얘기했던 ‘기업’을 수빈이 25차례나 썼다.
하지만 같은 어휘를 쓴다고 공감대를 찾아간다고 보긴 어려웠다. 규환은 “노동자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수빈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정부의 정규직 전환 방식이 절차적으로 공정했는지는 여전히 부정적”이란 태도를 견지했다. 수빈 역시 “비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기업 입장을 이해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정규직 전환은 꼭 필요하다. 특히 공공기관은 노동자 권리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했다.
1시간이 지나도록 ‘현실’에서 평행선을 달리던 규환과 수빈은 뜻밖에도 주제를 바라보는 다른 관점에서 공감대를 찾았다. 잠시 쉬어가는 시간, 편하게 사담을 나누던 청년들이 금방 서로에게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미래세대에 대한 고민이었다.
▽수빈=규환 씨는 좋은 아빠가 되는 게 목표라 했죠? 저도 요즘 다음 세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그들은 우리처럼 각박한 현실에서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규환=100% 동의해요. 우리 세대를 ‘공정 세대’라 부르잖아요. 근데 왜 이렇게 공정에 목을 매는지를 모르는 거 같아요.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니 작은 거에도 민감한 거예요. 노력해도 결과는 적은데 ‘내 몫’마저 뺏기는 거 같으니 억울하고 화가 날 수밖에 없죠.
▽수빈=맞아요. 가정일 뿐이지만 취업시장 상황이 지금보다 조금만 나았어도, 우리끼리 이런 주제로 다투지 않았을 거예요. 서로 방향은 다르지만 결국 이렇게 모여서 얘기를 하는 것도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보자고 그러는 거잖아요. 서로 생각이 달라도 출발은 비슷한 거네요. 지금 현실이 너무 어렵고 힘들다는 공감은 청년 모두 다르지 않은 거 같아요.
▽규환=하… 정말 그래요. 정규직 일자리가 많았다면, 다들 열심히 노력하면 보상받을 수 있었다면 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되는 것에 반대하겠어요. 결국은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 아닐까 싶네요. 서로가 마음의 문을 열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청년들은 결국 서로의 생각을 바꾸지는 못했다. 서로가 그리는 공정 사회도 여전히 달랐고, 그를 위해 각자 제시한 방법도 엇갈렸다. 하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바뀌어 있었다. 둘은 “서로의 자리에서 노력해 좋은 결실을 맺도록 응원하자”며 눈을 빛냈다.
카페를 나서는 청년들은 바빠 보였다. 규환은 극과극 대화에 참여하려 미뤄뒀던 스터디 모임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서둘러 달려왔다던 수빈도 오후 일정이 있다며 총총 사라졌다. 이날 대화는 그들의 가슴에 무엇을 남겼을까. 꿈꾸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청년들의 어깨가 이제 그만 처져 보이길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일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