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부터 75세 이상 어르신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받게 되셨습니다. 감염될 경우 가장 치명적일 수 있는만큼 우선 접종 대상이 되신 겁니다.
하지만 어르신들께 백신을 접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단 75세 이상 어르신들은 화이자 백신을 맞으셔야 하는데 화이자 백신은 영하 75도의 초저온 상태에서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찾아가는 접종이 어렵고 반드시 접종센터로 와서 맞으셔야 합니다. 그러나 어르신들 중에는 거동과 의사소통이 불편하신 분들이 많고, 디지털 기기에도 익숙치 않아 접종 예약조차도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어르신들께 접종 안내를 하고, 동의를 받고, 접종센터까지 안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일하는 일선 공무원들인데요. 이분들은 75세 이상 접종 계획이 발표된 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서울과 부산은 재보궐선거 업무까지 겹쳐 지난 3주가 그야말로 초죽음 상태였다고 하는데요. 여기 서울 한 동사무소 공무원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 3월 셋째주, “초대형 업무 폭탄이 떨어졌어요”
서울의 한 주민센터(동사무소). 코로나19 실무자 공지용 단톡방(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에 무심한 공지글 하나가 올라온 건 3월 셋째 주였다.
‘4월 1일부터 75세 이상 고령층 백신 접종 진행합니다. 각 동별로 대상자 파악해서 동의 절차 받아주세요.’
두 눈을 의심했다. ‘지금? 보름도 안 남았는데? 선거 준비도 바빠 죽겠는데 저걸? 4월 초에 택도 없을텐데?’ 하지만 아랑곳없이 곧바로 이어지는 공지들. ‘동의서 양식은 다음 파일 참고하시면 되고요. 통·반장님들 협조 요청 해주시고….’
질병관리청인지, 서울시인지, 우리 구청 자체 지침인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구청 담당자들에게 묻고 싶어도 이들 역시 접종센터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보니 질문해도 답도 없다. 어쨌든 ‘위’에서 동의 여부를 시스템에 입력하라고 요청한 1차 기한은 3월 25일. 달력을 보니 일주일도 안 남았다.
‘대체 우리 동에 접종 대상자가 몇 명이나 되지?’
부랴부랴 전산시스템에서 생년월일 기준으로 75세 이상 대상자 리스트를 만든다. ‘아… 바로 엑셀로 저장이 안되고 PDF로만 되는구나. 이걸 어쩌지.’
무한 클릭으로 간신히 변환 프로그램을 돌려 엑셀로 리스트를 만들고 일일이 검수를 하며 데이터를 다듬었다. 뽑아보니 주민 3만 여명 가운데 접종 대상자는 약 2000여 명. 20여 명의 직원들이 몇 개씩 통을 분담해 맡기로 했다.
“○○ 씨, 3개 통 맡을 수 있지?”
“으악, 동장님 무리에요~ 하나만 빼주세요. ㅠㅠ”
애원 끝에 겨우 2개 통 100여 명을 맡게 됐다.
바로 해당 통·반장님들께 전화를 돌린다.
“주말이라 죄송하지만 가가호호 방문해서 여쭤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네. 수고 좀 해주세요. 안 계신 분들은 체크해주시면 제가 나중에 가볼게요. 네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연락해서 통반장님들 찾아간다고 안내방송도 부탁해야겠네요. 무슨 일 있으면 연락주시고요.”
주말에도 이틀 내내 출근해서 상황을 체크했다. 데일리한 통상 업무에 재보궐선거 업무, 게다가 접종 대상자 업무까지 하다보니 녹초도 이런 녹초가 없다. 통·반장님들이 보내준 동의서 취합 내역을 받아 정리를 시작한다. 빈 곳이 여기저기 상당하다.
‘부재중인 분들이 많구나…. 밤 10시전에는 퇴근하고 싶었는데…. 버스가 끊기기 전에 퇴근할 수 있을까? 아아…. 내일 다시 월요일이야. ㅠㅠ’
● 3월 넷째주, “동의받기야 말로 본격 전쟁!”
아침 출근길이 겁난다. 전쟁터로 향하는 기분이다. 오늘은 얼마나 많은 전화와 카톡들이 오려나…. 커피 한 잔을 사고 심호흡을 한 뒤 주민센터에 들어선다.
오늘은 통·반장님들이 연락하지 못한 75세 이상 어르신들을 직접 찾으러 나서야 한다. 집들이 몰려 있는 아파트 단지는 그나마 낫다. 오래된 단독주택이나 빌라들은 찾아가는 것만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나마 막상 가서 동의서를 받으면 다행. 전화도 안받고 집에 아무도 안계시면 꼭 연락을 부탁드린다는 쪽지 한 장 밀어 넣고 다음 집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사람이 있다고 쉬운 것만도 아니다. 바로 접종 동의여부를 묻고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안내문을 드릴 때마다 같은 내용에 대한 질문이 계속 이어진다. 자녀 등 같이 있는 보호자의 질문이 더 많을 때도 있다.
“화이자 백신 괜찮아요?”, “문제 생기면 어떻게 돼요?” 등등.
‘제가 의사나 과학자도 아닌데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라는 말이 혀끝까지 차오르지만 최대한 접종을 하셔야한다고 설득하고 나온다. 몇몇 분들은 현 정부에 대한 욕을 쏟아내며 날 붙잡고 정책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일장연설을 하기도 하신다. 이러다보면 한 집에서 20분 넘게 잡혀있는 경우도 많다.
세 시간동안 30여 곳의 집을 정신없이 돌고 주민센터로 돌아왔다. 옆자리 주임님이 부러운 듯 말한다. “○○구는 구청에서 주민센터마다 2명 씩 지원자 보내줬다는데….”
‘구청장님 왜 우리는 그런 지원이 없는 건가요….’
동의 여부를 시스템에 입력완료 해야 하는 25일이 다가오고 있다. 마음이 급해진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
‘동의서 문항이 잘못 돼 있으니 다시 동의여부를 확인하세요’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23일 밤 행정안전부가 동의여부 문구를 고쳐서 각 지자체에 내려 보냈다는 것이었다. ‘심각한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 접종에서 제외된다’는 내용이 문제였다. 당초 이 표현은 접종센터로 이동이 곤란한 경우 센터에서는 못 맞고 추후에 접종한다는 의미였는데 아예 접종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로 오해할 수 있으니 정정한 내용으로 다시 확인하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한다. 같은 공무원이지만 정말 담당자가 앞에 있다면 멱살이라도 움켜쥐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동의를 받은 분들에게 다시 전화를 걸 수 밖에. 바뀐 동의서 문구를 안내하고 여전히 동의하는 게 맞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한다. ‘오늘도 제때 집에 가긴 글렀구나.’
● 4월 첫째주, “드디어 접종이 시작됐지만….”
가능할까 싶었던 ‘4월 1일 접종’이 시작됐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배정된 백신 물량을 보니 생각보다 하루에 접종할 수 있는 인원이 많지 않았다. 우리 동은 하루 약 20명 정도가 맞을 수 있는 것으로 나왔는데 먼저 접종받은 사람이 3주 후 2차 접종을 받아야 하는 것을 고려하면 대다수 대상자가 5~6월에야 접종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런 상황을 알게 된 어르신들이 주민센터로 민원전화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 사람아! 동의서 받을 때는 4월에 맞는다더니 왜 말이 달라진거야?”, “아니, 그럴 거면 대체 왜 그렇게 빨리 동의하라고 한 거여!”, “TV에서는 4월부터 맞는다던데 왜 나만 뒤로 밀렸어? 응?” 문의와 항의 그 어디쯤에서 온 종일을 보낸다. 모든 결정은 위에서 한 건데 욕은 우리가 다 먹으니 ‘액받이 무녀’라도 된 심정이다.
긴 하루 끝에 저녁 시간이 되고 주민센터가 문을 닫으면 이제부터는 다음날 접종 대상자들에게 전화를 돌려 건강상태나 심경 변화 등 접종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을 시작한다. 혹시 문제가 생긴 분이 있다면 바로 다른 대상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해도 다음날 아침이면 꼭 생각이 바뀌었다는 어르신들이 나온다.
“난 친구들이랑 같이 맞는지 알았지! 나 혼자서는 거기(접종센터) 찾아가기도 힘들어~.”
이럴 때면 부랴부랴 접종이 바로 가능한 다른 분들을 전화를 돌려 찾아야 한다. 누구는 늦게 맞는다고 화내고, 누구는 일찍 맞을 수 있어도 싫다고 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런 와중에 재보궐선거 사전투표일 지원도 다녀왔다. 집합시간은 오전 4시. 눈꺼풀이 천근만근이지만 잠시라도 코로나 업무에서 벗어날 수 있단 생각에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길을 나선다. 이제 곧 선거가 끝날테니 상황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창 밖을 보니 벚꽃이 다 졌다.
※이 기사는 서울지역 주민센터 공무원 A 씨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인터뷰는 5일 오후 11시45분 경, A 씨가 퇴근 후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전화통화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코로나19와의 전쟁 최일선에서 싸우는 모든 현장 공무원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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