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소화자매원 수녀원 건립에 십시일반 도움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20일 03시 00분


65년간 호남에서 활동한 수녀들, 평생을 결핵환자-장애인들 돌봐
세월 흐르며 수녀 절반이 정년퇴직… 노후에 정진할 수녀원 건립 시급

장애인 둥지인 광주 남구 봉선동 소화자매원(사진)은 1985년 사회복지법인이 되면서 부지는 국가소유가 됐다. 평생 봉사활동을 하던 수녀 17명은 소화자매원이 국가소유가 되면서 새로운 거처인 수녀원 건립이 절실해졌다. 소화자매원 제공
장애인 둥지인 광주 남구 봉선동 소화자매원(사진)은 1985년 사회복지법인이 되면서 부지는 국가소유가 됐다. 평생 봉사활동을 하던 수녀 17명은 소화자매원이 국가소유가 되면서 새로운 거처인 수녀원 건립이 절실해졌다. 소화자매원 제공
‘예수의 소화 수녀회’ 창립자인 김준호 레오 선생은 1956년 광주천 다리 밑에서 노숙인들을 돌보다 결핵을 앓게 됐다. 광주기독병원에 입원한 그는 한 청년을 만나 천주교 성녀 소화 데레사(1873∼1897)의 숭고한 봉사와 사랑정신을 배우게 됐다.

김 선생은 당시 비인가 복지시설인 무등원을 운영하며 소외계층을 돌보고 있었다. 수녀의 길을 걸으며 봉사활동을 하고자 했던 젊은 여성들이 모여들었다. 1966년 무등원은 사단법인 무등자활원으로 바뀌었다. 장애인들은 봉사단체의 지원 중단으로 양돈, 한봉 등으로 생계를 꾸려갔지만 어려운 재정 탓에 무등자활원은 존폐 위기를 맞았다.

평생 YWCA운동에 헌신하며 ‘광주의 어머니’라고 불렸던 고 조아라 여사(1912∼2003)가 무등자활원 운영에 힘을 보탰다. 1978년에는 천주교 성직자인 고 조비오 신부(1938∼2016)도 도움을 줬다. 조 신부는 당시 광주 남구 봉선동에 장애인 등을 위한 중환자실을 짓는데 사비를 털어 지원했고 천주교 신자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무등자활원을 도왔다.

1981년 소화자매원으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달라진 게 없었다. 미인가 시설인 탓에 장애인과 그 가족 80여 명은 정부로부터 생계비만 받을 수 있었다. 돼지 움막을 개조한 공간에서 사는 등 주거 공간은 열악했다.

1985년 소화자매원이 사회복지법인으로 인가받으면서 광주 남구 봉선동 부지는 모두 국가 소유가 됐다. 김준호 선생과 조비오 신부는 1999년 장애인을 돌보는 수녀들과 함께 예수의 소화 수녀회를 만들었다. 예수의 소화 수녀회는 현재 소화자매원을 비롯해 광주와 전북 전주에서 여성 정신요양시설, 여성 발달장애인 거주시설, 장애인직업재활시설, 정신재활시설 등 6곳을 운영하고 있다. 6곳에서는 장애인 200명이 생활하고 있다.

65년 동안 호남에서 결핵환자, 장애인들을 돌본 소화자매원이 한결같은 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수녀들의 헌신적인 사랑 때문에 가능했다. 윤남임 수녀(81)는 60년 넘게 결핵환자,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의 길을 걸었다. 세월이 흘러 수녀들은 평균 연령이 60세가 됐다. 수녀 절반은 70세 이상으로 정년퇴직을 해 사회복지 현장을 떠나게 됐다.

수녀 17명은 수녀회 부지가 국가 소유가 되자 거처할 곳이 없어졌다. 복지현장을 떠난 수녀들이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던 조비오 신부는 2016년 선종했다. 조비오 신부의 숙원사업이던 수녀원 건립은 조카인 조영대 신부가 이어받았다.

조영대 신부 등은 부족한 수녀원 건축비 마련을 위해 2019년 천주교 광주대교구 내 성당에서 모금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모금 활동이 중단돼 수녀원 건립은 요원한 상황이다.

조영대 신부는 19일 “청춘을 바쳐 오랜 세월 희생과 사랑을 바쳐 온 수녀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이제 노령이 된 수녀들이 서로를 돌보고 수도의 길에 더 정진할 수 있는 수녀원 건립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광주 소화자매원#수녀원 건립#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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