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A씨와 30대 B씨는 만나지 말았어야 할 인연이었다. 이들은 사회 선후배로 알게된 지 보름도 채 안 돼 살인 가해자와 피해자가 됐다. 경기 용인시에서 발생한 지인 살해사건 이야기다.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일했던 A씨는 지난해 2월 중순 지인 C씨의 소개로 B씨를 처음 만났다.
당시 A씨는 B씨와 C씨가 기거할 곳이 없다는 딱한 사정을 들었고, 호의를 베풀기로 했다. 자신이 관리하던 빈방 하나를 B씨와 C씨에게 내준 것.
하지만 A씨의 호의는 그게 전부였다. A씨는 B씨를 만난지 보름도 채 안 돼, B씨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다.
폭력행사 이유도 황당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려 B씨를 보냈다는 생각을 하게된 것. A씨는 자신의 집을 찾아온 B씨를 결박한 채 펜치 등으로 마구 때렸다. 그는 B씨를 자신이 제공한 거처로 끌고가는 과정에도 폭력행사를 지속했다.
생명에 위협을 느낀 B씨는 탈주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미 갈비뼈 등이 부러진 B씨는 멀리 도망하지 못한 채 다시 A씨에게 붙잡혔다.
영문도 모른 채 무자비한 폭행을 당한 B씨는 A씨의 감시망에서 벗어난 후 경찰에 관련 내용을 신고했다.
B씨의 신고사실을 안 A씨는 분노했고, 다시 B씨를 찾아갔다. 창고에서 삽을 꺼내 든 A씨는 B씨의 머리 등을 무자비하게 내리쳤다. 머리를 가격당한 B씨는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쓰러졌다. 하지만 A씨는 폭력을 멈추지 않았다.
뇌손상을 입은 B씨는 그자리에서 숨졌다. 당시 현장에는 C씨도 함께 있었다.
A씨는 C씨에게 요구했다. “네가 죽인거로 하자.” A씨의 잔혹성에 겁을 먹은 C씨는 ‘내가 죽였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작성해 A씨에게 건넸다.
A씨는 이를 토대로 수사기관에서 ‘C씨가 B씨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A씨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이 사건 최초 신고자가 C씨인 점, 살해도구인 삽 손잡이 부분에서 C씨가 아닌 A씨의 DNA가 검출된 점 등을 주목했다.
경찰의 치밀한 수사에 C씨에게 죄책을 떠넘기던 A씨는 결국 살인 피의자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가 자신을 청부살인하려 했다는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근거로 피해자를 폭행해 상해를 가했고, 피해자가 이를 신고하자 격분해 잔혹한 방법으로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판시했다.
이어 “게다가 살인 후 혈흔을 씻어내고, 시신에 옷을 입혀 다른 방에 두고 문을 잠그는 등 범행을 은폐한 것도 모자라 무고한 C씨에게 죄책을 전가하려는 시도까지 했다”며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A씨는 곧바로 항소했다. 최초 폭행 시 펜치를 사용하지 않았고, 삽 폭행 시 살인의 고의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사건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하며 형량 줄이기에 안간힘을 썼다.
항소심 재판부는 그러나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지난 20일 “피고인이 당시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이를 통제하지 못한 면은 있으나 현실판단력이나 현실검증력에 손상을 주는 정신병적 증상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A씨의 사실오인·양형부당 주장을 모두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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