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車 구분없는 보차혼용도로 조심… 보행자 사망사고 75% 발생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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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에서 생명으로]<2> 위태로운 이면도로 보행자 안전

23일 서울 양천구의 한 전통시장에서 시장 방문객들이 차량과 뒤섞여 좁은 도로를 위태롭게 지나고 있다.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줄이기 위해 보행자 교통안전 강화가 시급 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23일 서울 양천구의 한 전통시장에서 시장 방문객들이 차량과 뒤섞여 좁은 도로를 위태롭게 지나고 있다.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줄이기 위해 보행자 교통안전 강화가 시급 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23일 서울 양천구에 있는 한 전통시장. 화물차 한 대가 물건을 내리기 위해 상점 앞에 멈춰 섰다. 그러자 양손 가득 장바구니를 든 시민들은 차량을 피해 이면도로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길이 300m가 넘는 시장은 상점마다 내놓은 가판과 옥외광고물로 보도가 따로 없었다. 왕복 2차로 너비지만 시민과 차량, 오토바이 등이 뒤섞여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위험천만한 일도 벌어졌다. 한 남성 어르신은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에서 들어오다 지나가던 승용차와 정면으로 부딪힐 뻔했다. 바로 앞에 정차하고 있던 화물차에 가려 서로를 보지 못한 탓이었다. 승용차는 급정거하며 크게 경적을 울렸고, 깜짝 놀란 어르신은 자전거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서 피해 갔다. 시민 임재연 씨(85·여)는 “사람을 스칠 듯이 지나가는 차와 오토바이 때문에 놀라는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 벌어진다”며 불만스러워했다.

국내에서 교통사고 사망자는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지만 보행자들은 여전히 취약한 교통환경에 노출된 경우가 많다. 특히 양천구 전통시장처럼 보도와 차도가 분리되지 않은 이른바 ‘보차혼용도로’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 보차혼용도로에서 보행자 사망 많아

2019년 교통사고 사망자 3349명 가운데 보행자 사망은 1302명(38.9%)으로 전체 유형 가운데 가장 많았다. 인구 10만 명당 보행자 사망은 3.3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0명)의 3배가 넘는다.

보차혼용도로는 특히 심각하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2013∼2016년 전체 보행 교통사고 사망자는 7015명인데 5252명(74.9%)이 보차혼용도로에서 목숨을 잃었다. 하루에 3.6명꼴로 보차혼용도로에서 숨진 셈이다. 부상자도 하루 평균 100.3명에 이른다. 보도와 차도가 분리된 ‘보차분리도로’에 비해 사망자는 3배, 부상자는 3.4배가 높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2014년 1월부터 2018년 2월까지의 보행 교통사고 영상 985건을 분석한 결과 사고 원인(중복 가능)은 휴대전화 사용 등 운전자 부주의가 81%에 이른다. 불법 주정차로 운전자와 보행자의 시야를 가린 경우도 55%나 됐다.

2019년 전체 보행 교통사고 사망자 가운데 65세 이상이 57.1%(743명)인 것도 유념할 대목이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 분석 시스템(TAAS)에 따르면 2015년 50%(1795명 중 909명)보다 7%포인트 늘었다. 유상용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최근 보행자 사망 자체는 줄었지만 고령자 비중은 늘고 있다”면서 “교통약자의 통행 패턴에 맞춘 보호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보행자 우선도로 지정해야”

문제는 보차혼용도로에서 차량의 통행이 보행자보다 우선한다는 점이다. 현행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보행자는 보차혼용도로에서 차량과 마주 보는 방향의 길 가장자리로만 통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면도로 대부분이 폭이 좁은 상황에서 이런 규정을 지키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전문가들은 보행자 안전을 위한 도로환경·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폭이 12m 이상인 도로는 양쪽에 보도를 설치하는 게 좋다. 폭이 좁아 보도 분리가 어렵다면 도로를 블록 포장해 운전자가 도로를 보행구역으로 인식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보행자 우선도로’로 지정해 보행자에게 우선적인 통행권을 부여하는 것도 중요하다. 독일이나 네덜란드 등은 보차혼용도로를 보행자 우선구역으로 지정하고 해당 구역 내 차량 속도를 ‘보행속도’ 이하로 제한한다.

허억 가천대 국가안전관리전공대학원 교수는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어린이를 보호해야 하는 것처럼 도로에서 약자인 보행자를 보호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국내 운전자들도 보행자 중심의 교통문화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 팀장 박창규 사회부 기자 kyu@donga.com

▽ 변종국(산업1부) 신지환(경제부) 정순구(산업2부)

이윤태(사회부) 신아형(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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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차혼용도로#보행자 사망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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