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성 우선’ 폐지 추진…부부 협의땐 엄마姓 쓸 수 있게 바꾼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27일 20시 35분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이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 News1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이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 News1
각자 배우자와 사별한 뒤 황혼의 사랑에 빠져 함께 사는 70대 노인 커플, 혼인 신고가 속박이라고 생각해 동거하는 젊은이들, 친부모 학대를 받은 어린이를 사랑으로 돌보는 위탁 가정….

이처럼 가족보다 더욱 가까웠지만 지금까지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이들이 진짜 가족이 되는 길이 열렸다. 여성가족부가 27일 내놓은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이 일정대로 2025년까지 모두 법제화된다면 이들은 법적인 가족이 될 전망이다.

정부가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최근의 사회적 흐름이 반영됐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19세 이상 79세 이하 국민 15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혼인과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의 69.7%에 달했다. 국민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이들을 새 가족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 가족의 정의가 바뀐다
현행 민법과 건강가정기본법상 ‘가족’은 혈연과 결혼이 중심이다. 자신을 중심으로 배우자, 부모자식, 형제자매가 법적 가족이다. 배우자의 가족도 자신의 가족이다. 하지만 수십 년을 함께 산 동거인이나 연인은 가족이 아니다. 이 때문에 가족 지원책에서 소외됐다. 상속 받는 것도 어려웠다. 여가부 측은 “대안적 가족 공동체가 활용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민법상 유언 제도를 개선해 동거인 등이 상속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추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부는 법정 상속인이 아닌 사람에게도 자신의 재산을 줄 수 있는 ‘유언대용 신탁’도 이들 가정에 적극 교육할 예정이다. 다만 여가부는 동성 커플에 대해선 이번 가족 범위 확대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여가부 관계자는 “동성 커플을 확대 가족의 범위에 포함시키는 것은 앞으로 사회적 합의가 더 필요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가족 범위가 넓어지면서 ‘배우자’ 정의도 확대된다. 지금까지는 혼인 신고를 하지 않고 함께 사는 사람 사이에서 폭력이 발생하면 가해자를 ‘가정 폭력’으로 처벌하기 어려웠지만 앞으로 이에 준해 처벌하기로 했다. 가족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가족도 생긴다. 정부는 양육 의무를 저버린 부모가 먼저 숨진 자녀의 유산을 상속받지 못하도록 하는 민법 개정안(이른바 ‘구하라법’) 도입도 검토한다. 이 법은 가수 고 구하라 씨가 사망하자 어린 시절 집을 나간 친모가 유산 상속을 주장하면서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다.

● ‘부성(父姓) 우선’ 폐지 추진
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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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성을 우선 따르는 ‘부성 우선’ 원칙은 이번에 폐지됐다. 앞서 자녀가 반드시 아버지의 성을 따르게 한 ‘부성 강제’ 원칙은 2008년 폐지됐다. 이를 대체한 부성 우선 원칙도 이번에 아예 폐지하기로 했다. 부부는 아이를 낳은 뒤 출생신고를 할 때 누구의 성을 따르면 될지 협의해 결정할 수 있다. 신옥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부모가 자녀를 함께 낳았는데 한 성만 일방적으로 따르게 하는 것은 성평등 원칙에 어긋난다”며 “부부 협의 원칙이 실효성도 갖춘 방향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해외 일부 국가는 자녀가 부모 성을 함께 쓰거나 아예 자녀의 성이 부모와 다른 경우도 있다. 스페인어권 국가는 통상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을 함께 쓴다. 네덜란드는 부모가 출생 전 또는 출생 신고 때 아이의 성을 정할 수 있다.

한부모 가정 양육비 지원 확대도 이번 계획에 포함됐다. 한부모가족 아동양육비 지원대상은 부모가 24세 이하인 경우에서 34세 이하로 확대된다. 그동안 생계급여를 받는 한부모가족에게는 아동양육비가 지급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이들에게도 지원이 이뤄진다. 미혼모가 병원이 아닌 집에서 혼자 출산하면 유전자 검사와 법률 상담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김소영기자 ksy@donga.com
이지운기자 ea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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