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검찰 견제 등을 주목적으로 설립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조만간 검사 비위를 ‘1호 사건’으로 수사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공수처와 검찰 간의 전운이 짙어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공수처와 검찰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에 연루된 검사 사건의 이첩 범위를 둘러싸고 갈등을 겪은 데다 공수처의 허위 보도자료 배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두 기관 간의 ‘전면전’ 비화 우려도 나온다.
본래 공수처의 존재 목적은 대통령과 6부 요인, 국회의원 등 이른바 ‘살아 있는 권력’을 제대로 감시하기 위함이지만 여권의 속내가 검찰 권력을 약화시키는 데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런데 공수처가 검사 임용을 마무리하고 수사 체제를 막 가동하려는 이 때 공수처 접수 사건의 40% 정도가 검사 비위와 관련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검찰이 공수처의 역사적인 첫 수사 대상에 오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공수처의 수사를 지켜봐야겠지만 공수처가 전현직 검사를 대상으로 1호 사건 수사에 착수하게 되면 검찰조직 전체가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일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공수처 수사가 계속될수록 수사를 받는 검사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검사들로선 비리 의혹을 받는 검사 개인의 문제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공수처가 얼마나 은밀하고 탄탄하게 수사를 준비하느냐가 관건이겠으나 경우에 따라선 수사 대상자나 검찰의 조직적 반발이 나올 여지도 없지 않다.
법조계에서는 현재 공수처 수사팀이 특별수사 경험이 전무한 법조인으로 꾸려졌다는 점에서 법률 전문가인 검사와 판사 등의 비리를 수사할 경우 신중을 기해야 무리한 수사나 부실 수사에 따른 무죄 판결 등을 피할 수 있을 것이란 의견이 적지 않다. 일례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서 수십 년 간의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 경험이 축적된 검찰이 대법원의 협조까지 받아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지만 지금까지의 하급심 판결에서 대부분의 판사들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공수처도 이런 상황을 감안해 향후 수사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검찰도 이미 공수처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공수처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황제 조사’ 논란을 해명하며 배포한 보도 설명자료에 허위 사실이 담겨 있다며 김진욱 공수처장 등을 고발한 사건을 수원지검이 파헤치고 있다. 검찰은 허위 보도자료를 작성한 혐의로 고발된 공수처 대변인 등 실무진에게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를 한 상태다.
공수처는 이달 2일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이 지검장 면담조사 당시 공수처에 청사 출입이 가능한 관용차가 2대 있었다. 2호차는 체포 피의자 호송용으로 뒷좌석에서 문이 열리지 않는 차량이었으므로 이용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수처 공용차량 운영규정’ 등에 대한 확인 결과 공수처가 호송용으로 임시 사용한다는 쏘나타 차량은 여운국 차장이 업무용으로 쓰는 것으로 알려졌고, 또 공수처의 해명 취지와 달리 경찰 호송차와 같이 뒷좌석에서 문이 열리지 않도록 별도 개조 작업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져 허위 논란이 일고 있다.
얼핏 보기에 단순 해프닝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이 사건이 간단치 않은 것은 과거 정부기관의 보도자료에 허위 내용을 적시했다가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형사 처벌된 사건이 근자에 있었기 때문이다.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당시 “댓글 활동은 정상적인 사이버심리전”이라는 허위 보도자료를 배포한 국정원 관계자는 2017년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에 의해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혐의로 기소돼 2019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보도자료 작성 및 배포의 최종 책임자인 김진욱 처장이 검찰에 기소될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것도 이런 판례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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