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동네 체육관에서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온 기자의 할머니는 자나 깨나 손녀 걱정뿐이었습니다. 짧은 통화 중에도 여러 번 “그래서 너희는 언제 맞니” 물으셨죠. 일하는 젊은 사람들이 맞아야 할 백신을 당신이 먼저 맞았다면서요.
“우린 언제 맞을 수 있어?” 이 질문은 복지부 출입기자로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29일 국내 코로나19 백신 접종자는 300만 명을 넘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고령층이거나 의료기관·취약시설 종사자죠. 적어도 2분기(4~6월)까지 코로나19 백신은 정해진 우선순위에 따라 맞는 게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서 건강한 성인의 접종 시기는 ‘하반기 이후’로 점칠 뿐입니다.
● 백신 접종계의 ‘패스트 트랙’
언제 맞을지 기약이 없어서일까요. ‘노쇼(no-show)’ 백신을 맞을 수 있다는 소식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예상보다 뜨거웠습니다. 방역당국이 ‘노쇼로 남는 백신을 누구나 맞을 수 있다’고 밝히자 전국 병의원에 신청자가 몰렸습니다. 백신 접종에도 일종의 ‘패스트 트랙’이 있다는 소식에, 그리고 여기에 건강한 성인도 이름을 올릴 수 있다는 소식에 관심이 집중된 거죠. 접종 패스트트랙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1바이알(약병)에 10~12인분의 약이 들어있습니다. 독감 백신처럼 1인분씩 딱 떨어지게 포장이 안 돼있는 셈이죠. 1바이알을 개봉하면 6시간 안에 맞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전예약을 통해 접종인원을 조절하는 게 중요합니다. 안 그럼 ‘한 방울도 아까운’ 백신을 버리게 되니까요.
앞서 보건소나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할 땐 ‘남는 백신’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손님’들이 계속 이어지다보니 대신 맞을 사람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보건소 직원들이 요양시설에 방문접종 갔을 때를 돌이켜볼까요. 방문접종을 가게 되면 당일 열이 난다든지 건강상의 이유로 접종 받을 수 없는 어르신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이송요원들이 대신 백신을 맞았습니다. 이들 역시 우선 접종 대상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달 19일 동네의원을 통한 접종이 시작되면서 ‘남는 백신’ 문제가 생겼습니다. 동네의원은 직원이 많아야 대여섯 명이니 직원들을 접종하고도 남는 백신이 생긴 것이죠. 이에 방역당국은 의원마다 ‘예비명단’을 만들어 활용하라고 안내했습니다. 당일 남는 백신이 생기면 예비명단 신청자에게 연락해 사용하는 거죠. 이렇게 해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이 허용된 30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백신을 맞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겁니다.
29일 오전 11시경 서울 종로구 A 의원은 예비명단에 이름 올린 사람만 100명에 가까웠습니다. 병원 관계자는 “잔량이 아예 안 나오는 날도 있고, 많아 봐야 10명분이 채 안 된다”며 “언제쯤 연락이 갈지 예측할 수 없다. 2주 가까이 기다려야 할 사람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 의원마다 예비명단 활용 편차 커, 안내 필요
한편, 갑자기 나온 정책이다 보니 일부 의원은 아직 예비명단 제도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곳도 있었습니다. 기자가 연락한 의원 10곳 중 3곳은 “예비명단에 대한 안내를 못 받았다”고 했습니다. 일반 국민은 더더욱 모르고요. 서울 광진구 B 의원처럼 “재직증명서를 가져와야 한다”는 곳도 있었습니다. 병원이 제도를 잘못 알고 있었던 겁니다. 이 제도는 백신 폐기를 줄이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의료, 돌봄 등 어떤 직업에 종사하느냐와 상관없이 누구나 이름을 올릴 수 있습니다. 질병관리청은 전국 위탁의료기관에 예비명단에 대한 안내를 했다고 하지만 현장 분위기는 달랐습니다.
5월부터는 동네의원을 통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더욱 늘어납니다. 노쇼 등으로 남는 백신도 훨씬 많아지겠죠. 백신 수급이 원활해지면 동네의원에서 맞을 수 있는 백신 종류도 얀센, 노바백스, 모더나 등으로 다양해 질 수 있습니다. 예비명단에 대한 안내와 관리 역시 더 중요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