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황제 조사’ 논란을 해명하면서 허위 사실을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한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대변인을 불러 조사했다. 최근 ‘공소권 유보부 이첩’ 조항이 담긴 공수처 사건사무규칙이 논란이 된데 이어 내부 문서 유출, 공수처 관계자 출석 조사 등 여러 문제가 겹치면서 “공수처가 내우외환의 위기에 직면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대변인은 검찰 조사, 파견 경찰관은 문서 유출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수원지검 수사팀(팀장 이정섭 부장검사)은 4일 오전 공수처 대변인을 겸하고 있는 문상호 공수처 정책기획담당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날 조사는 2시간 가량 이뤄졌으며 검찰은 조만간 문 담당관을 다시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앞서 김진욱 공수처장은 3월 7일 이 지검장을 면담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관용차(1호차)를 이 지검장에게 제공해 ‘황제 조사’ 논란이 불거졌다. 공수처는 지난달 2일 “청사 출입이 가능한 관용차가 2대 있었는데, 2호차는 체포 피의자 호송용으로 도주를 방지하기 위해 뒷좌석에서 문이 열리지 않아 이용할 수 없었다”는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하지만 공수처의 이같은 설명과 달리 2호차는 호송용으로 특수 제작·개조된 차량이 아닌 일반 승용차였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시민단체 등의 고발이 이어지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김 처장은 문 담당관에 대한 검찰의 출석 통보 소식이 알려지자 “(검찰이) 압박하는 것이냐”며 발끈했고, 검찰은 “우리가 공개하지 않았다”고 반박하는 등 갈등이 빚어졌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 합격자 명단이 외부로 유출되는 일도 있었다. 공수처는 자체 감찰 결과 경찰청 소속 파견 경찰관이 유출자로 특정돼 원대복귀 조치했다고 6일 밝혔다. 공수처는 “파견 직원으로 공수처에 직접적 징계권한이 없어 소속기관에 통보하고, 수사참고자료를 송부했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경찰관 개인의 문제일 뿐 아니라 조직 기강이 잡히지 않은 공수처의 현재 상황을 대변하고 있는 모습”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 법조계 “1호사건 전 수사체계 정비돼야”
공수처는 최근 검사와 수사관 선발을 마무리하고 사건사무규칙을 제정하는 등 본격적인 수사체제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25명의 검사 정원 중 15명(처·차장 포함)만 선발됐고, 이 가운데 11명의 신임검사들은 4주간 법무연수원에서 교육을 받을 예정이라 당장 수사에 착수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태다. 이런 와중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재조사 의혹 과정에서 불거진 ‘청와대발 기획 사정 의혹’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변필건)로부터 이규원 검사 관련 사건을 이첩받았지만 50일 넘게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고위공직자범죄‘방해’처라는 조롱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재이첩 또는 수사 개시 등을 빠르게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제정한 사건사무규칙에 판사, 검사의 비위 사건의 경우 다른 수사기관에 사건을 이첩하더라도 기소 여부는 공수처가 결정한다는 ‘공소권 유보부 이첩’ 조항을 명시해 검찰과 마찰을 빚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공수처장 임명 등 공수처 설립 단계에 관여한 이찬희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공수처가 검찰의 뒤통수를 때린 격”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을 지낸 양홍석 변호사는 “상위법 위반 소지가 많은 공수처의 사건규칙을 토대로 수사에 착수한다면 그 자체로 위법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면서 “지금은 1호 수사에 열을 올릴 때가 아니라 수사 체계와 역량을 정비해야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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