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학교 가는 길’의 김정인 감독(39)은 2017년 발달장애인 아이 엄마들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기겠다고 다짐했다. 김 감독은 ‘강서지역 공립 특수학교 신설 1차 주민 토론회’가 제대로 진행되지도 못하고 무산됐다는 내용의 짧은 기사를 읽었다.
당시 5세 딸을 둔 아빠로서 마음이 쓰였다. 그는 “아무리 특수학교라고 해도,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있을지 전혀 몰랐다”고 했다. 기사 끄트머리에 두 달 뒤 2차 토론회가 열린다는 내용을 보고 무작정 찾아갔다.
엄마들은 고성이 오가는 토론회 현장에서 또박또박 특수학교의 필요성을 말했다. 무릎을 꿇은 엄마들의 등 뒤로 쏟아지는 비난과 야유를 생생하게 들었다. 김 감독은 이날 엄마들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후 엄마들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다녔다. 정해진 촬영 기간은 없었다. 처음 촬영을 시작할 때부터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언젠가 서진학교가 문을 여는 날’로 정해 뒀다. 그렇게 ‘학교 가는 길’은 엄마들의 발걸음을 기록했다.
김 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만난 장애인 부모들에게 “내가 만약 일찍 세상을 떠나면 두 눈을 다 감지 못할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래서 이들의 소원은 자녀보다 딱 하루만 더 산 뒤 죽는 것이었다. 김 감독은 “장애인 부모들이 한쪽 눈이라도 편하게 감고 떠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김 감독의 삶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그의 집 근처에도 장애인복지관이 있다. 종종 동네에서 장애인을 마주칠 때마다 그전엔 자신도 모르게 피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영화 속 주인공 자녀들과 긴 시간 가족처럼 지내며 다른 장애인들도 자연스레 평범한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김 감독은 3년 동안 공들인 영화를 세상에 내놓기 전에 한 가지 원칙을 세웠다. 서진학교 건립에 반대했던 주민들을 영화 속에서 ‘악마’처럼 그리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만약 자신의 영화가 어떤 개인이나 단체에 망신을 주는 영화로 받아들여진다면, 그건 실패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김 감독은 “‘저 사람들 왜 저래’ 하고 관객이 욕을 하고 끝난다면 우리는 서진학교 사건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게 된다”며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지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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