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경찰도 아니잖아” 코로나 장기화에 우는 공무원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12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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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날리지(Corona+Knowledge)] <11>

“당신 경찰도 아니잖아. 어디서 유세야. 저리 안 비켜?”

11일 서울의 한 노래방. 방역담당 공무원인 A씨는 야간 단속 중 봉변을 당했다. 마스크를 미착용하고 열창을 이어가던 5명의 회사원을 발견한 뒤다. 문을 열고 들어가 “기본 방역수칙 위반으로 10만 원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고지했지만 돌아온 건 욕설이었다. “신분증을 제시해 달라”고 하자 위반자들은 “당신 수사권 없지?”라며 A씨를 밀쳤다. A씨와 동료 직원 1명으론 이들을 막기 어려웠다. 결국 그들은 유유히 자리에서 사라졌다. A씨는 씁쓸한 마음으로 노래방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평일 오후 10시 30분경 서울 종로구 청계천 삼일교 밑 돌계단에서 시민 30여 명이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서울시 조례에 따라
 청계천에서는 음주가 금지돼 있지만 이날 오후 10시부터 약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현장 순찰에서 300명 넘는 시민이 술을 
마시다 안전요원의 계도를 받았다.
평일 오후 10시 30분경 서울 종로구 청계천 삼일교 밑 돌계단에서 시민 30여 명이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서울시 조례에 따라 청계천에서는 음주가 금지돼 있지만 이날 오후 10시부터 약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현장 순찰에서 300명 넘는 시민이 술을 마시다 안전요원의 계도를 받았다.
신규 확진자가 400~600명대를 오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단속강화 방침을 밝혔지만 정작 일선 현장은 그야말로 ‘카오스’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백신, 확진자, 선별진료소 등 다양한 업무가 폭증했다. 이 와중에 단속까지 해야 하지만 인력이 없는 것이다. 공무원들이 어렵게 현장에 나서 적발을 해도 과태료 부과에 순순히 응하는 경우는 드물다.

인구 30만 명이 넘는 충남 A시에는 6000여 개의 식당, 술집이 있다. 하지만 주 1회 경찰과 합동단속을 펼치는 날을 제외하면 시청 행정직 2명이 단속 업무를 전담한다. A시 방역담당 팀장은 “확진자 관리, 백신 접종, 선별진료소 등 각지에 차출되다보니 단속에 집중할 인력이 없다”며 “민원이나 신고가 들어오는 건에 대해 대응하는 것 이상의 단속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식당 술집의 영업제한이 시작된 오후 11시경 서울 종로구 청계천 인근에서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마스크를 벗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도 간간이 보인다.
식당 술집의 영업제한이 시작된 오후 11시경 서울 종로구 청계천 인근에서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마스크를 벗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도 간간이 보인다.
식당과 술집의 영업이 끝나는 오후 10시 각종 공원에 인파가 몰리는 서울 B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인력 부족에 현장 단속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B구의 방역담당 관계자는 “중앙 정부가 ‘강력 단속’을 예고해도 제대로 된 지침이나 인력지원을 해 준 적이 없다”며 “사실상 정부가 지자체에 단속 업무를 떠넘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3월부터 4월 3주까지 전국 17개 시도의 일일 방역위반 행정조치는 평균 3.9건에 그쳤다. 지자체 한 곳당 하루 4건 정도 방역수칙 위반을 적발했다는 뜻이다. 특히 울산은 하루 0.2건, 광주는 0.4건에 그쳤다. 정재훈 가천대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사실상 정부와 지자체가 방역지침 관리에 손을 놓고 있는 셈”이라며 “백신 고위험군 접종이 끝날 때까지 방역으로 버텨야 하는데, 적극적인 행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앙 정부도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다. 자영업자 반발에 거리두기 단계 상향 조정이 어려운 가운데, 5인 이상 모임금지 등에 대한 반발은 더욱 커지고 있다. 방역 당국 관계자는 “단순하게 힘으로 누르는 건 가장 쉬운 방역이다. 하지만 자영업자의 고통이 너무 길고, 경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적극적으로 나서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유근형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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