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사업주 형사처벌, 美 원청에 수십억 벌금…선진국 무거운 벌칙에 산재 급감

  • 뉴스1
  • 입력 2021년 5월 23일 08시 12분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를 추모하는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날’인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덕수궁 돌담길에 산재사망 시민분향소에서 한 시민이 사망 노동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2021.4.28/뉴스1 © News1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를 추모하는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날’인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덕수궁 돌담길에 산재사망 시민분향소에서 한 시민이 사망 노동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2021.4.28/뉴스1 © News1
 지난달 22일 대학생 이선호씨가 평택항에서 무게 300㎏ 컨테이너에 깔려 숨진 데 이어 이달 8일에도 40대 근로자 2명이 사망했다. 내년 1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전해진 잇단 비보에 해외 수준으로 사업주나 원청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재해로 사망사고가 나면 원청 업체인 대기업 경영진을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000만원 이상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는 법이다. 산업재해를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건 과도하다는 재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우리보다 앞서 산업재해 문제를 겪고 억제하는 데 성공한 유럽과 미국, 일본 등에서는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원청에 책임을 묻는다. 또 산업 현장에서 사망자나 부상자가 나와도 벌금액이 미미한 우리와 달리 징벌적 수준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안전 규정을 준수하는 것이 오히려 비용을 줄인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유인효과가 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우선 영국은 산업재해를 가장 강력하게 처벌하는 국가다. 영국은 지난 2007년 국내 중대재해처벌법의 모델이 된 ‘기업 과실치사 및 기업 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 일명 ‘기업살인법’을 제정했다. 산업현장에서 근로자가 다치거나 사망하면 경영책임자와 현장 관리자를 형사 처벌한다.

또 산업현장에서 심각한 관리상 실책이나 부주의 등으로 사망자가 다수 발생하면 기업에 상한선 없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하고 있다. 실제 지난 2011년 근무 중 사망사고로 기업살인법 적용을 받은 영국 토목회사 코츠월드 지오테크니컬은 연매출의 250%에 해당하는 벌금을 내고 이듬해 파산하기도 했다.

그 결과 영국의 근로자 1만명당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2019년 기준 1.62명으로 서구 선진국들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1974년 보건안전법(Health and Safety at Work etc Act)이 만들어진 이래 90% 가량 줄었다고 영국 보건부는 설명한다.

미국은 노동부 산하 직업안전위생관리국(OSHA)에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OSHA에서 불시 감독을 나가 점검한 뒤 규정 위반시 건당 1만2934달러의 벌금을 부과한다. 지적사항을 개선하지 않으면 매일 추가 벌금이 가해진다. 사업주가 기준을 어겨 소송을 당하면 벌금을 더 물어야 한다.

또 하청업체 근로자가 산업 현장에서 사망하면 원청이 민사상 책임을 져야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원청 책임 강화를 골자로 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이른바 ‘김용균법’ 시행 후에도 원청이 직접 책임을 지는 경우는 없었다. 일하다 숨진 근로자는 2019년 855명에서 2020년 882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일본의 경우 산재가 발생하면 원청에게 형사책임(현장소장과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 된 지시를 내린 자에게 징역 6월 처분), 행정처분(작업정지 등), 민사책임(불법행위 책임, 안전배려 의무위반 시 근로자 배상), 사회적 책임(공공공사 입찰 참가 금지) 등 4중 책임을 묻고 있다. 산재를 은폐하다가 적발되면 관련 업체는 공공공사 입찰참가가 무기한 금지된다. 그 결과 1994년 2414명에 달했던 산업재해 사망자가 2020년 909명까지 감소했다.

‘산업 선진국’ 독일에서는 산업별, 지역별 재해보험조합이 산재 처리를 전담하고 있다. 일하다 다친 근로자가 회사 눈치를 보느라 산재 신청을 하지 않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재해보험조합이 의료진의 보고를 바탕으로 산재 여부와 보상 수준 등을 결정하는 식이다.

또 산재 치료 관련 사항을 관할하는 ‘산재의사’ 제도를 시행 중이다. 산재가 일어나면 근로자는 반드시 산재의사의 진단을 받고 치료 및 요양 정도를 평가받아야 한다. 재해가 경미해 일반 의사에게 치료받더라도 산재의사가 치유 경과를 확인해야 한다.

전문가들도 우리나라 산재상황이 심각한만큼 특단의 제도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산재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일하다 다치고 죽는 사람이 많다”며 “기존 법으로는 해결이 안되기 때문에 특단의 제도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에 통과된 법에도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하고 원안보다 책임자 처벌 수준이 약화되는 등) 피해갈 수 있는 길이 많다”면서 “고용노동부가 시행령이나 세칙을 만들 때 빈틈을 잘 메워 영국처럼 큰 효과를 거두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달리 경영계는 반발하고 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중대재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입법화하는 건 필요하지만 모든 사안에 형사처벌을 지우려는 것은 문제”라며 “과도한 규제로 기업을 옥죄면 제조공장의 해외 이전, 인재 유출 등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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