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장영훈]역사 깃든 쇼핑명가 … “응답하라, 대백”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25일 03시 00분


장영훈·대구경북취재본부
장영훈·대구경북취재본부
18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대백) 본점. 매장을 둘러봤지만 손님을 보기 힘들었다. 다음 날이 공휴일인 부처님오신날이고 선물이 많이 오가는 ‘가정의 달’ 5월인가 싶었다. 일부 직원은 상품을 박스에 옮겨 담고 점포를 정리하는 등 어수선했다. 7층 한 스포츠 매장은 이달 31일 폐점한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화려한 건물 외벽 광고도 볼 수 없었다.

대백 본점이 7월 휴점한다는 소식은 충격이었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폐점 수순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현실은 더 암울하다. 한 매장 관계자는 “개점휴업 상태다. 곧 문 닫는 백화점을 누가 찾겠냐”고 했다. 경영 여건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는 직격탄이 됐다. 브랜드 철수 요청과 마진 인하 요구 등 악순환이 이어진다.

대백은 일제강점기 이후 대구의 첫 백화점(1969년 12월 26일 개점)으로 오랜 시간을 대구시민들과 함께했다. ‘쇼핑=대백’일 정도로 한동안 명성이 대단했다. 본점을 기반으로 중구 대봉동 프라자점까지 확장하며 지역 대표 백화점으로 성장했다. 신세계백화점이 1973년 대구에 진출했다가 2년여 만에 철수한 이유도 대백의 벽 때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대백은 2000년대 들어 ‘빅3’ 백화점이 대구에 진출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그간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다. 온라인 몰을 열고 아웃렛에도 진출했다. 하지만 반전은 없었다. 시대 흐름에 뒤처지면서 옛 추억을 간직한 중년 고객조차 외면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다른 백화점들이 획기적인 시도로 또다시 앞서가고 있다. 롯데백화점 대구점은 다음 달 중순 6층에 1300m² 규모의 실내 골프연습장을 연다. 주차장과 바로 연결된 33타석 매장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공인 시뮬레이터를 갖췄고 프로골퍼가 레슨을 한다. 이 백화점은 7월 점포 5층에 롯데건설의 아파트 모델하우스도 선보인다. 2600m² 규모에 가전 가구 매장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같이 전시한다.

신세계백화점 대구점은 최고급 자동차 브랜드인 벤틀리 매장을 열었다. 국내 백화점 중에서 처음이다. VIP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켜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백화점은 대구에 진출했던 역사를 전시한 공간을 마련해 대구시민들의 향수도 자극하고 있다.

두 백화점의 발상은 기존의 틀을 완전히 깼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다. 이제 대백이 벼랑 끝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관심이 쏠린다. 대백이 쇼핑 명가를 재건하는 것은 대구의 유통 역사와 전통을 잇는 일이기 때문이다.

장영훈·대구경북취재본부 jang@donga.com
#쇼핑명가#대구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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