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경희고와 한양대부고에 대한 선고를 포함해 지금까지 지위를 회복한 자사고 9곳에 대한 법원의 판결 취지는 동일했다. 교육청이 재지정 평가 커트라인을 이전보다 높이고 지표를 변경하면서 이를 자사고에 미리 알리지 않아 학교들이 여기에 맞춰 학교를 운영할 수 없었는데, 평가대상(5년)에 소급 적용한 것은 재량권의 일탈·남용이란 것이다.
○ 현 정부 들어 자사고 폐지 압박 가속화
자사고를 포함해 외국어고, 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다. 고교 서열화를 없애고, 2025년 고교학점제를 도입하려면 자사고 등을 일반고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리다. 진보교육감들은 예전부터 이들 학교가 ‘특권 학교’인 탓에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현 정부 출범으로 교육부와 진보교육감의 논리가 맞닿으면서 자사고 폐지 작업이 급물살을 탔다.
교육부는 2018년 전국 시도교육청에 자사고에 대한 재지정 평가를 앞당기라고 지시했다. 또 교육청들과 함께 2019년 자사고 재지정 평가 지표를 이전과 다르게 만드는 작업을 벌였다. 이에 따라 자사고 평가 커트라인이 10점 올라가고, 감점 한도도 크게 확대됐다.
아예 교육부는 2019년 말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2025년부터 자사고 외고 국제고의 법적 지위를 없앴다. “현행 평가로는 기준을 넘긴 자사고 등을 없앨 방법이 없어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진보교육감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자사고는 국가가 고교 교육 다양화가 필요하다면서 만든 것인데 갑자기 이를 바꾸면 국가의 교육시책에 대한 일반 국민의 신뢰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자사고의 부작용이 드러났다면 제대로 운영되도록 유도하라”는 취지로 판결했다.
○ “교육 헌신한 학교 죽이기에 혈세 낭비”
서울 지역 자사고 소송 1심 판결이 28일 마무리되자 8개 자사고 교장들은 서울행정법원 앞에 모였다. 교장들은 “수십 년에서 길게는 100년이 넘게 대한민국 교육에 헌신해 온 지역사회의 명문 사학들이 졸지에 ‘지정 취소 학교’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며 “이로 인해 신입생 지원이 줄고 재정이 악화돼 학교 법인의 막대한 지원 없이는 정상적인 학교 운영마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토로했다.
또 “학교별로 수천만 원에 이르는 소송비용까지 감당해야 했는데 조 교육감은 그간 국민의 혈세로 지불한 1억2000만 원의 소송비도 모자라 또 항소를 하겠다고 한다”며 “이는 학생과 학부모, 학교의 피해를 가중시키는 반교육적 처사”라고 꼬집었다.
조 교육감은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에서 해직교사 부당 특별채용 의혹이 드러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1호 사건 수사 대상이 돼 조사를 받고 있다. 자사고 지정 취소 소송에서도 4번 연속 패소하면서 그야말로 ‘사면초가’ 상황이다. 하지만 이날도 서울시교육청은 선고가 나오자마자 항소할 방침을 밝혔다. 서울시교육청은 입장문을 통해 “아쉬움과 유감의 뜻을 밝힌다”며 “항소에 따른 학교의 부담과 소송 효율성을 고려해 법원에 사건 병합을 신청하겠다”고 발표했다.
교육계에서는 조 교육감이 자사고 요구대로 사과하거나 항소를 취하하진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8개 자사고 교장들은 다음 달 17일 경기 안산동산고에 대한 판결이 나오는 시점에 맞춰 감사원 감사 청구 등의 행동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안산동산고까지 소송에서 이기면 자사고 지위를 회복한 전국 10개 학교는 2024학년도까지 신입생을 기존처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최종 운명은 ‘개정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부당하다’며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헌법소원 결과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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