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에 있었던 ‘튤립 파동’은 최초의 자본주의적 버블(거품 경제) 사례로 꼽힙니다.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터키산 튤립에 수요가 몰렸습니다. 사재기로 인해 튤립 알뿌리 하나의 가격이 집 한 채 값과 맞먹을 정도로 폭등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버블이 급격히 가라앉으며 튤립 가격은 최고치 대비 수천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습니다.
최근 가상화폐에 대한 투자 열풍이 거셉니다. 인터넷 시대에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새롭게 등장한 가상화폐는 금속화폐나 종이화폐와 달리 정부의 통제 없이 개인 간에 자유롭게 거래됩니다. 튤립과 가상화폐는 내재 가치보다는 투기적 수요와 결부되어 있으며 가격 변동 폭이 크다는 점에서 닮은 점이 있습니다.
한때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화폐 투자자들 사이에서 ‘가즈아’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투자 광풍이 불었습니다. 최근에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의 줄임말), 빚투(‘빚내서 투자한다’의 줄인 말)라는 신조어와 함께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마치 인생의 승부라도 걸듯 투자하는 모양새입니다. 엄청난 수익을 올린 사례와 함께 투자금을 몽땅 날린 사례들이 뒤섞여 나옵니다.
전기자동차 테슬라와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50·사진)의 코인 관련 언행이 연일 화제입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비트코인으로 테슬라를 살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해서 코인 가격을 급등시키더니, 어느 순간 그 말을 철회하고 도지코인이 좋다는 식의 트윗을 날리는 바람에 가상화폐 시장이 롤러코스터처럼 출렁였습니다.
자신의 발언으로 비트코인 값이 크게 오르자 머스크는 보유하고 있던 코인의 일부를 팔아 막대한 이익을 남겼습니다.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투자자들은 분노했고 테슬라 불매운동으로 번지기도 했습니다. 만약 머스크가 주식시장과 같은 제도권 시장에서 이러한 행위를 했다면 시세조종과 부당이득으로 처벌받았을지 모릅니다.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변덕스러운 그의 언행에 짜증을 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말에 기대 투자 타이밍을 잡기도 합니다. 머스크의 이미지는 이중적입니다. 한편으로는 미래 자동차와 우주여행의 꿈을 향해 앞서가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리더로서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언행으로 인해 그는 대중의 관심을 즐기고 혹세무민하는 사기꾼의 이미지도 얻었습니다.
머스크의 언행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학자도 있습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머스크가 심한 관종(關種·관심병 환자)인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곽 교수는 “자신이 코인 시장을 주무르는 현재 상황을 굉장히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뭔가 계속 관심받을 일을 해야 살아있다고 느끼는 심리적 경향이 매우 두드러진 사례”라고 진단했습니다. ‘스톱일론’이라는 단체는 머스크를 시세 조종자로 깎아내리면서 ‘나르시시즘적 억만장자’라고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가상화폐의 미래와 가능성에 대한 논란을 차치하고, 한 방을 노리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시장 변동성을 키우는 머스크를 좋아할 수도, 미워할 수도 있겠지요. 그 판단 기준은 아마 자신의 수익률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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