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 서가에 꽂힌 한 권의 책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마이클 셸런버거 지음, 노정태 옮김, 부키, 664쪽, 2만2000원
플라스틱 빨대를 주지 않는 커피전문점이 있다. ‘별 다방’이라 불리는 곳이다. 2018년에는 세계 2만8000여 개 매장에서 플라스틱 빨대 제공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계기가 있었다. 2015년 8월 해양학자들이 바다거북의 콧구멍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뽑아내는 영상이 화제가 됐다. 영상에는 빨대를 뽑는 내내 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바다거북의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이 영상을 찍은 인물이 크리스티안 피게너다.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의 저자 셸런버거에 따르면 피게너는 요즘 걱정이 많다. 플라스틱 빨대 타령을 하다가 진짜 문제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기업들이 플라스틱 빨대를 안 쓴다는 걸로 쉽게 면죄부를 얻으려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사실 매년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900만t의 플라스틱 쓰레기 중 빨대는 0.03%에 불과하다.
셸런버거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거북의 사망률을 상승시킬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단, 그가 보기에 플라스틱이 바다거북을 멸종에서 구했다. 수천 년간 인류는 매부리바다거북의 껍데기를 이용해 보석, 안경, 빗 따위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산 채로 거북 껍데기를 떼어내기도 했다. 플라스틱이 발명되면서 비로소 ‘인간의 야만’이 멈췄다.
비닐봉투 대신 종이봉투, 플라스틱병 대신 유리병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종이봉투가 비닐봉투보다 환경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려면 44회 이상 재사용해야 한다. 유리병은 플라스틱병에 비해 생산 과정에서 170~250%의 에너지를 더 소비한다. 또 200~400%의 이산화탄소를 추가 발생시킨다. 제작공정상 들어가는 열에너지가 훨씬 많은 탓이다.
일론 머스크가 부풀린 ‘태양광 예찬론’에 대한 셸런버거의 공박은 날카롭다. 태양광 패널이 아무리 발전해도 1㎡당 50W(와트) 이상 전력을 생산할 수는 없다. 반면 천연가스와 원자력발전소의 에너지 밀도는 1㎡당 2000~6000W 사이를 오간다. 또 태양광 단지를 건설하려면 야생을 파괴해야 한다. 실제 국내 산림청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0년 5월 말까지 태양광발전으로 훼손된 산림 면적은 5014ha, 여의도 면적의 17배에 이른다.
즉 환경주의가 세속종교가 됐다. 종교의 신도는 선진국과 일부 개발도상국에 거주하는 상위 중산층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 삼림국장은 “목재 연료는 화석연료보다 환경에 부담을 덜 준다. 숯을 포함하면 전 세계 재생에너지 공급량 중 40%를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아니, 선진국 중 목재만 사용해 경제발전을 이룬 나라가 있기나 한가?
댐은 저렴한 비용으로 건설이 가능하고 높은 에너지 밀도를 갖고 있다. 그런데 캘리포니아의 NGO는 ‘강은 지구의 동맥’이라는 이유로 콩고의 댐 건설에 반대한다. 미국 댐을 파괴하자는 주장은 하지 않는다. 자신들은 문명의 이기를 누려놓고 개발도상국이 같은 경로를 택하면 환경주의라는 라벨로 막는 것이다. 이렇듯 셸런버거는 “극단의 환경주의자들이 세뇌해 온 교조주의적 통념”을 까발린다. 표지에는 “‘침묵의 봄’ 이래로 가장 탁월한 업적”이라는 문구가 있다. 정확히는 ‘침묵의 봄’이 퍼뜨려온 이데올로기를 해체하는 책이다. 환경주의자들 반론이 궁금하다.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 최진석 지음, 북루덴스, 296쪽, 1만7000원 노장철학 분야 석학으로 손꼽히는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는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는 문턱에서 함정에 빠졌다고 말한다. 진영 논리에 사로잡힌 정치인 등 우리 사회 구성원 상당수가 과거 사고방식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한 지금 대한민국이 ‘다음’으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철학자의 시선으로 톺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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