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많은 비판과 정치적 부담에 불구하고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서울고검장으로 승진시킨 데는 나름의 불가피한 내부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형사 피고인을 고검장으로 승진시키는 인사가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여권이 몰라서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속사정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 지검장이 지난달 12일 수원지검 수사팀(팀장 이정섭 부장검사)에 의해 기소되고 자진 사퇴 여론이 고조될 때 스스로 물러났더라면 정권 입장에서는 큰 고민거리 하나가 해결되는 셈이었다. 곧 있을 검찰 인사에서 현 정부에 여러 가지로 기여한 공이 있는 이 지검장을 어디로 보내야 하는지를 놓고 머리를 싸매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지검장은 사퇴는커녕 자신의 결백함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면서 ‘버티기’에 들어갔고, 결국 검찰 인사는 이 지검장을 최대한 배려한 것으로 평가되는 서울고검장 승진으로 귀결됐다. 범죄 혐의로 기소된 통상의 공무원이나 검사의 경우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인사 혜택을 이 지검장은 누리게 된 것이다. 각계의 비판이 쇄도하고 있지만 당사자인 이 지검장이나 인사를 낸 청와대 모두 별 일 아니라는 듯 덤덤한 분위기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이 지검장이 이번 인사 과정에서 청와대와 여권 핵심을 상대로 상당한 주도권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지검장이 김학의 전 차관 사건에 연루돼 기소된 것은 인사를 앞둔 자신에게 엄청난 약점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광철 대통령민정비서관, 조국 전 민정수석 등 정권 핵심 관계자들이 이 사건에 함께 연루된 것이 이 지검장의 ‘인사 협상력’을 높인 요인이 됐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019년 안양지청의 불법 출국금지 사건 수사를 방해한 혐의와 관련이 있는 인사는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었던 이 지검장, 이 비서관, 조 전 수석 등이다.
이 지검장은 당시 안양지청 수사를 중단하도록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는 이 지검장이 그해 3월에 있었던 김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와 6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관여한 정황이 공개된 수사 무마 과정을 모두 소상히 알고 있을 가능성을 키우는 대목이다. 거기에다 이 지검장은 지난해 1월 이후 현재까지 ‘검찰 2인자’라 일컬어지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재직하면서 여권 핵심 인사들과 정치권이 연루된 민감한 사건 처리에 관여했다. 어느 사건이건 정권 내부의 비밀이 이 지검장을 거쳐 갔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 사건 처리와 관련된 정권 내부의 비밀을 많이 접했다는 것은 역으로 정권의 ‘약한 고리’를 많이 알게 됐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 지검장과 여권 양측이 승승장구하는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서로의 비밀이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지검장이 기소될 처지에 놓이고 인사에서 좌천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과 같이 한쪽이 피해를 입게 되는 갈등적 상황이 생기면 그간 서로가 협업했던 그 모든 과정이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여권이 김학의 사건으로 어려움에 처한 이 지검장을 버릴 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처음에는 여권이 모종의 경로로 이 지검장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 지검장은 여권의 의중을 이행하는 관계였을 수 있다. 하지만 정권 관련 사건 처리가 늘어갈수록 이 지검장에게도 힘이 쏠리면서 급기야 이 지검장이 ‘토사구팽’ 당할 수 있었던 최근 위기 국면에서 이 지검장의 보호막이 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 지검장의 서울고검장 승진은 ▲친정부 검사 중용 ▲윤석열 라인 완전 배제 ▲그를 통한 정권 수사 철벽 방어라는 이번 인사 기조에도 부합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정권에 기여한 검사는 끝까지 챙긴다는 메시지를 전체 검사들에게 던짐으로써 임기 말 검찰을 정권의 우군으로 두기 위한 검찰개혁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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