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그림. 언뜻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예술의 그윽함과 추모의 마음은 통하는 데가 있다. 그런 조합을 현실로 옮겨놓은 곳이 있다.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백병원 장례식장의 ‘흔적 갤러리’다. 지난해 10월 리모델링을 거쳐 개장한 이 장례식장의 로비에 문을 열었다.
이달 5일 찾은 흔적 갤러리에는 이응노 화백의 회화 ‘대전교도소’, 김병종 화백의 ‘생명의 노래-숲에서’를 비롯해 조방원 장덕 김영기 같은 유명 화가의 작품이 전시 중이었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왕실의 장례의식을 묘사한 판화도 걸려 있었다. 현재 55점이 전시되는데 3개월에 한 번꼴로 작품을 교체한다. 전시공간을 찾지 못한 부산 지역 작가나 이 장례식장에 빈소가 차려진 고인 등의 작품도 전시할 예정이다.
이 작품들은 흔적 갤러리의 산파역을 했고 현재 운영을 맡은 김연하 백석예술대 디자인미술학부 교수(시각디자인 전공)의 소장품이다. 김 교수는 “대중이 문화예술을 쉽게 받아들이려면 어디서든 예술작품을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장례식장 갤러리가 만들어졌다”며 “‘쉬운 예술’을 전파하기 위한 첨병 역할을 하는 이런 갤러리를 계속 만들겠다”고 말했다.
쉬운 예술을 더 잘 보급하기 위해 김 교수는 강성규 미래정공 회장, 이 장례식장을 위탁 운영하는 ㈜부산시민장례식장의 문병기 창업주 등과 ‘부울경 옥션’을 설립했다. 부산지역 기업을 대상으로 그림을 대여하고 매매를 중계해 예술의 대중화에 힘쓴다는 취지에서다.
이를 위해 갤러리의 매매 수수료를 10%로 책정해 작품 가격을 낮춰 예술 대중화를 확산시키겠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화랑 수수료가 작품 가격의 40~60% 반영돼 가격 상승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김 교수는 “수수료를 낮춰 작품 가격이 호당 5만~10만 원에 형성되면 대중화에 기여할 것”이라며 “전문 큐레이터를 영입해 수준 높은 작품들을 전시하면 유명 컬렉터들이 관심을 갖게 돼 예술 대중화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흔적 갤러리와 부울경 옥션은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한국 동양화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데도 힘을 쏟을 방침이다. 또 부산지역 상공인들과 협력해 전시 공간 마련, 지역 작가 발굴, 판로 다양화에도 나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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