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페인트칠, 다음날 철근 날라… 잡부처럼 이리저리 보조업무 투입
추가업무 시키는 악습 현장에 남아… 2016년 구의역 사고 이후 5년 동안
업무중 사고로 청년 249명 숨져
“선호야, 잘 가라. 가더라도 아빠는 용서하지 말고 가라.”
9일 오후 1시경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
올해 4월 경기 평택항에서 화물컨테이너 적재 작업을 하다 목숨을 잃은 이선호 씨(23)의 아버지 이재훈 씨(60)는 흐느끼며 아들을 목 놓아 불렀다. 유족과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가 봉행한 49재에서 아버지는 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 유족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고인의 장례는 아직 치르지 못하고 있다. 이 씨는 “오늘 아들의 영혼을 떠나보냈다”며 “육신은 보내지 못하는 아비의 찢어지는 마음을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겠나”라며 오열했다.
대학 등록금을 벌려고 아르바이트하다 숨진 이 씨처럼 청년들이 산업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사고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의 외주업체 직원 김모 씨(당시 19세)와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김용균 씨(당시 24세) 등 희생자가 나올 때마다 당시에만 주목받을 뿐 본질적인 개선책은 나오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실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구의역 사고가 발생했던 2016년부터 올해 3월까지 만 18∼29세 청년 근로자는 모두 249명이 업무 도중 사고로 숨을 거뒀다. 이들이 목숨을 잃은 원인은 첫 번째가 ‘끼임’이었고 두 번째가 ‘떨어짐’이었다고 한다.
이런 청년들은 대부분 숙련도가 떨어지는 근로자인 경우가 많다. 민주당 윤준병 의원실이 고용노동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8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국내에서 산재사고 사망자는 모두 2486명이다. 사망자 10명 가운데 6명꼴로 근속 기간이 6개월 미만인 미숙련 노동자들이었다.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20대 청년들은 젊다는 이유로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가 잦다고 하소연했다.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했던 선모 씨(24)는 지난해 여름 한 현장에서 느닷없이 “신호수로 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선 씨는 “신호수는 건설현장을 통제하는 중요한 역할인데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한 채 투입됐다. 일이 익숙하지 않아 오가는 건설장비에 부딪혀 온몸에 멍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20대 근로자 A 씨도 “젊다는 이유로 ‘잡부’처럼 이리저리 투입돼 보조 업무를 떠맡는 일이 태반”이라고 말했다. 부산에 사는 근로자 이모 씨(29)는 “청년 근로자에게 기존 업무 외 추가 업무를 시키는 ‘악습’이 아직도 현장에 남아 있다”며 분개했다.
이선호 씨 역시 사고 당시 평소 본인의 업무가 아닌 컨테이너 청소를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고인의 49재에 참석한 친구 이철우 씨(23)는 “현장에 가면 청년 근로자에게는 하루는 페인트칠, 다음 날은 철제 나르기 등 매번 다른 일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2018년 경기 가평의 한 건설현장에서 아들 권지웅 씨(당시 28세)를 잃은 어머니 심인호 씨(54)는 “이선호 씨 뉴스를 보는 순간 아들이 떠올라 한참을 울었다”며 “다시는 젊은 아이들이 헛되이 숨지는 일이 없도록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권 씨는 당시 보조로 일하다 화재가 발생하자 현장에 익숙한 다른 직원과 달리 탈출구를 찾지 못해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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