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찰청의 진상조사로 청와대와 법무부가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의 차관 임명 전에 택시기사 폭행 사건을 알고 있었다는 정황이 9일 드러났다.
이 전 차관의 폭행 사건은 지난해 11월 6일 발생했고, 이 전 차관은 지난해 12월 2일 차관으로 임명됐다. 올 1월부터 이 전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에 대한 외압 의혹의 진상을 조사한 서울경찰청은 청와대가 지난해 11월 16일 이후, 법무부는 같은 달 9일 이전 폭행 사건을 인지한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 후보로 거론되던 이 전 차관은 같은 달 8일 또는 9일에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의 정책보좌관과 수차례 전화 통화를 했다고 한다. 같은 달 9일 법무부는 이 전 차관을 추천 대상자에서 제외했다. 이 전 차관 사건이 내사 종결된 같은 달 16일 이후 청와대는 이 내용을 파악했지만 지난해 12월 2일 이 전 차관을 법무부 차관에 임명했다.
경찰은 9일 “사건 처리 과정에 부정한 청탁이나 외압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전 차관의 폭행 사건 사흘 뒤인 지난해 11월 9일 오전 7시 서울 서초경찰서 생활안전과 소속 D 경위는 서울경찰청 생안계 직원 E 씨에게 내부 메신저로 공수처장 후보로 거론되던 이 전 차관이 가해자라는 사실을 보고했다. 같은 날 오전 서초경찰서장 C 총경과 형사과장 L 경정, 형사팀장이었던 K 경감, 담당 수사관 J 경사 등 수사라인과 서초서 정보계 직원도 이 같은 사실을 파악했다. 하지만 서울경찰청 등 윗선이나 청와대, 법무부 등에 보고되지 않았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은 이 전 차관의 폭행 장면 블랙박스 영상을 보고도 내사 종결한 J 경사를 특수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곧 송치할 예정이다.
이용구, 폭행사건 2~3일 뒤 당시 秋법무 보좌관과 수차례 통화
靑, 폭행 알고도 李차관 임명 정황… “정밀 인사검증 없이 강행” 비판 진상조사단, 5개월 조사결과 발표, “담당 경찰이 단순폭행으로 처리” 말단 1명만 檢송치 ‘꼬리자르기’… 서초서 간부들, 폭행사건 사흘뒤 李 공수처장 후보 거론 알고도… 경찰청 보고 안한 것 의혹 남아
“부정한 청탁이나 외압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대상자들 또한 모두 외압 또는 청탁 행사를 부인하였습니다.”
지난해 11월 택시 기사를 폭행한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경찰 수사 과정에서 윗선의 청탁이나 외압 등은 없었다는 것이 서울경찰청 진상조사단의 9일 수사결과 발표 내용이다.
올 1월부터 5개월 가까이 진상조사를 한 경찰은 당시 서울 서초경찰서장 C 총경을 포함한 수사라인 4명의 휴대전화 데이터가 일부 삭제된 사실을 확인했지만 이를 100% 복원하지 못했다. C 총경과 서울경찰청 생활안전계 직원 E 씨 등은 ‘이 전 차관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 후보군 중 한 명’이라는 내용을 지난해 11월 9일 인지했지만 진상조사단은 “중요 사안이 아니다” “보고 사안이 아니다”라며 그 윗선으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관련자 진술을 그대로 공개했다.
경찰의 진상조사 과정에서 법무부는 지난해 11월 9일 이전, 청와대는 같은 달 16일 이후 이 전 차관의 폭행 사건을 인지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 전 차관은 8일 또는 9일에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의 정책보좌관과 수차례 통화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청와대가 이 전 차관 폭행 사건의 경찰 처분 과정에 대한 정밀한 인사검증 없이 차관 임명을 강행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 서초서장 등 4명 휴대전화 증거인멸, 복원 못 해
진상조사단은 C 총경을 비롯해 형사과장인 L 경정, 형사팀장인 K 경감, 수사 담당자인 J 경사의 휴대전화와 사무실 PC 등을 포렌식했다. 이 전 차관의 휴대전화도 확보해 분석했다. 경찰 관계자는 “부정한 청탁이나 외압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C 총경 등 서초서 경찰 4명의 휴대전화에서 일부 삭제 정황이 나타났다. K 경감은 저장된 데이터를 복구 불가능하도록 만드는 안티포렌식 애플리케이션까지 설치했다. 이렇게 삭제된 내용 중 일부는 포렌식을 통해서도 복원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C 총경과 L 경정 등은 지난해 11월 9일 오전 “가해자가 공수처장 후보로 거론되는 변호사”라는 내용을 차례로 접하고도 상급 기관인 서울경찰청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이날 오전 7시 서초서 생안과 D 경위는 서울청 생안계에 가해자인 이 전 차관이 공수처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라는 내용이 포함된 내용을 메신저로 알렸다. 이날 오전 택시기사 S 씨를 불러 조사를 한 J 경사는 오후 1시 51분 이 전 차관의 혐의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운전자폭행 혐의에서 반의사 불벌죄인 형법상 단순 폭행죄로 바꾸는 내용의 보고 문건을 작성했다. 서울청 직원은 오후 2시경 D 경위에게 사건 진행 경과를 파악한 뒤 ‘형사과로 사건이 인계되었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 보고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경찰청 범죄수사규칙에 따르면 일선 경찰서장은 변호사의 범죄 사건이 발생하거나 접수됐을 경우 절차에 따라 시도경찰청이나 경찰청에 내용을 보고해야 한다. 경찰청은 수사결과 발표 직후 내사 사건 처리 절차를 수사 단계와 유사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개선 대책을 내놨다.
○ 청와대 사건 인지하고도 차관 임명 강행
법무부는 지난해 11월 9일 이전, 청와대는 같은 달 16일 이후 폭행 사건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외압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법무부와 청와대 관련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정황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차관이 같은 달 8일 또는 9일에 추 전 장관의 정책보좌관과 수차례 통화한 사실도 이때 파악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찰은 해당 통화가 외압이나 청탁으로 이어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서초서 간부들이 이 전 차관의 신상 등을 내부에서 파악하고 공유한 지난해 11월 9일은 공수처장 후보 추천 마감일이었다. 유력 후보 중 한 명으로 꼽혔던 이 전 차관은 최종 추천 명단에서 제외됐다. 같은 해 12월 1일 추 전 장관은 청와대에 이 전 차관을 신임 차관에 임명해줄 것을 요청했고, 청와대는 그 다음 날 임명을 강행했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내고 “수사 담당자 한 명만을 송치해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며 “경찰 지휘라인을 통해 외압이나 부정한 청탁이 있었는지 추가 조사나 수사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권기범 kaki@donga.com·유원모 기자 / 이소연 always99@donga.com·박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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