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병원에서 ‘나 말고 딸부터 구해 달라’는 말만 내내 해요. 몸도 안 성한데 충격 받을까 봐 말도 못 하고….”
아버지는 중환자실에 입원할 정도로 중상을 입었건만 자기 안위엔 관심 없었다. 신음 섞인 목소리로 겨우 입을 떼면서도 “○○이 어디 있느냐”며 딸만 찾았다. 사고 이틀째. 차마 누구도 딸이 세상을 떠났다는 걸 전하지 못했다.
10일 오전 광주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은 전날에 이어 충격 어린 탄식과 비통한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9일 철거 건물 붕괴 사고 당시 함께 버스를 탔던 아버지 김모 씨(69)는 아직 딸(30)의 부고를 알지 못한다. 김 씨는 현재 광주기독병원 중환자실에 있다. 왠지 모를 느낌 때문인지 계속 딸만 찾는다고 한다.
부녀는 버스에서 앉은 자리가 달라 생사가 갈렸다. 아버지는 버스 앞쪽에, 딸은 뒤쪽에 앉았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철거 건물이 버스를 덮칠 당시 인도에 있던 아름드리나무가 완충 작용을 해 버스 앞쪽 탑승객은 목숨을 구했다.
○ 덧없이 잃어버린 늦둥이 아들딸
사고로 숨진 9명은 조선대병원과 전남대병원, 광주기독병원 등 3곳으로 옮겨졌다. 9일부터 자리를 지킨 유족들은 물론이고 10일 장례식장을 찾은 지인들도 황망한 표정이었다. 일부 사망자는 부검 절차가 늦어져 아직 빈소를 차리지 못하고 있다.
9일 저녁 딸 김 씨가 안치된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에 온 어머니는 오열을 멈추지 못하고 자기 탓만 했다. “엄마가 미안해. 우리 막내딸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며 가슴을 쥐어뜯었다. 김 씨의 두 언니는 울먹이면서 “엄마 잘못 아니야”라며 부축했다. 어머니는 10일 광주시 관계자들이 찾아오자 “내 새끼 살려내라”며 또 한번 울부짖었다.
“딸만 다섯인 집의 늦둥이 막내예요. 집안 대소사를 살뜰하게 챙겨 아빠 엄마가 유독 예뻐했어요. 수의과대 편입시험을 준비하면서도 팥죽집 운영하는 부모님을 위해 가게 일도 자주 도왔죠. 엇나가는 일 한 번 없는 착한 아이였는데…. 그날도 석 달 전 갑상샘암으로 수술한 뒤 병원에 입원해 있던 엄마 면회 가는 길이었대요.”(김 씨 유족)
함께 참변을 당한 고등학교 2학년 김모 군(17)도 늦둥이 외동아들이었다. 밝은 성격에 예의도 발라 집안에서 두루두루 사랑받았다. 김 군의 학교는 9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등교 없이 비대면 수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교내 밴드부에서 활동하는 김 군은 몇 가지 상의할 게 있어 후배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김 군의 아버지는 사고 직전 아들과 통화도 했다. 아버지는 “지금 학교에서 출발해서 집에 간다고 했다. 그게 마지막으로 목소리 듣는 것일 줄 누가 알았겠느냐”며 흐느꼈다.
“장인어른께서 집 근처에 큰 사고가 났다고 알려주셨어요. 혹시나 해서 다시 아들에게 전화했는데 안 받는 거예요. 평소에 전화를 잘 안 받는 아이가 아니라서 덜컥 했죠. 정신없이 사고 현장으로 뛰어갔어요. 거기서 집까지 겨우 두 정거장밖에 안 남았는데…. 지난해까지도 자기 직전에 옆에 누워서 어리광 부리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 서로를 다독이고 보듬은 유족들
유족들은 하루가 지났지만 가족을 잃은 현실을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9일 사고로 숨진 이모 씨(61)의 남편 한승만 씨(65)는 눈물이 가득한 채 손에 든 휴대전화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스마트폰 화면에는 누군가의 위치를 알려주는 점이 깜빡거렸다. 한 씨는 “아내가 버스에 타고 있다가 사고를 당한 지점”이라며 울먹였다.
“가족끼리 어디 있는지 알고 싶어 앱을 깔았어요. 아내는 빛고을국악전수관에 판소리 배우러 갔었거든요. 올 때가 됐는데 안 와서 들여다보니 한곳에 멈춰 서서 움직이질 않아 이상했는데, 사고가 났다는 속보가 뜨는 거예요.”
순간 가슴이 내려앉은 한 씨는 그길로 광주 시내 병원을 뒤졌다. 제발 아니길 바라면서. 하지만 광주기독병원에서 결국 부인 이 씨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한 씨는 “아무리 연락해도 답이 없어 처음부터 불안했다”며 “아내가 판소리가 치매 예방에 좋다며 열심히 배워서 나도 가르쳐 주겠다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몇몇 사망자의 유족들은 자신의 아픔도 가누기 힘들면서도 서로를 보듬고 위로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교생 김 군의 어머니가 장례식장 바깥에서 넋이 나간 듯 울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자, 또 다른 사망자 임모 씨(63)의 유족 한 명이 다가가 조용히 안아주고 다독였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오랫동안 얼굴을 파묻은 채 하염없이 굵은 눈물만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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